이맘때면 잊을 수 없는 햇보리밥의 구수한 맛
  • 경북도민일보
이맘때면 잊을 수 없는 햇보리밥의 구수한 맛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07.06.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호수/편집국장
 
  망종(芒種·6일)절기를 말하듯 경북 들녘에 보리베기와 모내기가 한창인 절기다. 예전엔 24절기가 농사의 지침이었고 `농가월령가’는 농사의 스케줄이었다.
 작금엔 영농의 과학화로 계절농사가 따로없다. 한겨울에 수박을 먹듯 4계절 식생활 혁명을 가져온 세상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농사시기도 빨라져 절기는 달력의 기록용으로 명맥을 이을 뿐이다. 망종은 긴 보릿고개를 넘기는 분수령이었다. 조정래가 소설 `태백산맥’에서 보릿고개를 `죽음을 거부한 몸부림’이라고 했듯이 망종 무렵이면 꽁보리밥일 망정 주린배를 채울 수 있었다. `보릿고개 밑에서/아이가 울고 있다/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할아버지가 울고 있다/아버지의 눈물/외할머니의 흐느낌/어머니가 울고 있다/내가 울고 있다.’ 황금찬의 시 `보릿고개’가족들은 배가 고파 모두 울고 있다.
 배가 고픈 아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한 알의 보리 알’로 보일 뿐이다. 보릿고개는 가난했던 시절,우리 민족이 넘었던 눈물겨운 삶의 고개다.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가는 5,6월쯤이면 대부분의 농가는 쌀독이 비었다. 봄나물을 뜯어 죽을 쑤어 먹거나, 풋보리를 베어 알갱이를 쪄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어린 시절 주전부리 할 것은 산야에 지천이었다. 가시넝쿨을 헤치고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따먹으며 달콤한 포민감에 젖었다. 밭두렁 뽕나무에 올라 까맣게 물든 오디를 따먹으면 입술이 잉크 빛으로 변해도 즐거웠다. 생밀을 껌처럼 씹었고 또래들과 어울려 `밀서리’도 했다. 밀 이삭을 잘라 모닥불에 구운 뒤 손바닥에 얹어놓고 비비면서 껍질을 후후 불면 밀알이 속살을 드러낸다. 알맞게 익은 밀 알갱이는 구수하고 달착지근하다. 검댕이 묻은 얼굴과 입술을 바라보며 낄낄거리다가 주인에게 들켜 혼줄나게 도망가던 그때 그 시절도 되돌아보니 추억이다. 햇보리밥의 구수한 맛도 잊을 수 없다. 커다란 양은 그릇에 보리밥을 푸고 그위에 열무나 상추를 손으로 잘라서 얹는다. 애호박과 부추를 넣고 끓인 된장에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먹던 보리밥 맛이 어머니의 손맛처럼 그립다. 보릿고개 시절 굶주림을 해결해 주던 보리가 `주곡(主穀)반열’에서 퇴출 위기에 몰렸다. 정부가 2011년까지 보리 매입가격을 매년 2~6%씩 단계적으로 인하하고 2012년부터 정부매입을 중단하기로 확정해 보리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공급과잉에 재고가 쌓여 국고손실이 누적된다는 것이 이유다. 1948년부터 시작된 보리수매값이 해마다 조금씩 올랐으나 가격이 인하되기는 59년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수매가격 인하 안을 마련해 상정했지만 정치권과 농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관철되지 못하다가 정권 말기에 슬그머니 단행했다.
 가공식품 개발 등으로 활로를 찾기보다 손쉬운 가격인하와 수매폐지방침을 정한 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문제다. 한미FTA타결,농산물개방 확대,소비자의 기호변화,농산물가격 하락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농민의 시름만 더욱 깊어진다. 보리는 민간유통이 거의 불가능한 곡종으로 대체작목도 여의치 않다.
 대파와 양파 등 겨울 대체작물로 바꾸면 생산과잉으로 가격폭락을 가져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선기자생활을 마감하면서 창녕 처가곳 야산 5000여 평에 단감나무를 심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대박을 노린 것은 아니지만 쪽박을 찬 셈이다.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도 공급과잉 앞에서는 맥을 못추고,`나무는 거짖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아마추어적 수요공급 예측이 빚나간 것이 실패요인이다. 수요예측에 따른 작목 선정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어렵다.
 보리야말로 영양이 풍부한 웰빙식단의 주원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차별화와 저비용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소득작물과 가공식품개발로 농업의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는 없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