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경제 지형 뒤흔든 영국의 EU 탈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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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경제 지형 뒤흔든 영국의 EU 탈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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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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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유권자들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함으로써 전 세계가 우려하던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유럽연합(EU) 잔류와 탈퇴를 놓고 23일(현지시각) 영국에서 실시된 국민투표 집계 결과 `탈퇴’ 지지가 51.9%로 `잔류’ 지지(48.1%)를 3.8%포인트 앞섰다. 이에 따라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에 유럽통합과 결별하고 고립의 길을걷게 됐다. 영국은 앞으로 2년간 탈퇴협상을 벌여 상품·서비스·자본·노동·이동의 자유는 물론 정치·국방·치안·국경 문제 등 EU 제반 규정을 놓고 새로운 관계를 협상해야 한다. 국가 간 연합체에서 탈퇴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국민의 주권에 속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후폭풍은 결코 영국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우선 전 세계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주식시장은 폭락세를 보였고 향후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을 우려해 이른바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달러화와 엔화는 가치 폭등, 신흥국 통화는 가치 폭락의 장세를 연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달러 환율이 29.7원이나 폭등(원화 가치 폭락)하는가 하면 코스피 지수는 3.09% 급락해 4년여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고 코스닥 지수는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급락세를 보인 끝에 전날보다 4.76% 내린 채 장을 마감했다. 당사국인 영국도 파운드화가 장중 10% 가까이 폭락하면서 1985년 이래 31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경제적 충격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고 많은 전문가는 보고 있다. EU 회원국 가운데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덩치가 클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의 허브 역할을 하는 영국의 EU 탈퇴는 그리스나 아이슬란드와 같은 소국의 경제불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유럽과 세계 경제에 타격이 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야심적인 정치 실험 가운데 하나라고 할 유럽통합은 결정적 위기에 직면했고 창설 이래 첫 탈퇴를 경험하게 된 EU의 존립도 위태로워졌다. 그러지 않아도 유럽 각국에서는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부터의 난민 유입이나 이민자 증가에 따른 경제·사회적 갈등을 들어 고립의 장벽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높은 터였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이탈 도미노’와 함께 외국인 혐오, 이민 반대와 같은 극우 정치 세력의 득세가 우려된다. EEC의 발족(1958년 1월 1일)으로부터 기산한다면 벌써 6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유럽통합의 움직임이 이처럼 한순간에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게 된 것에는 허무함을 금할 수 없다.

 영국의 국내 정치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캠페인 과정에서 영국은 찬반 논쟁이 격화하면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양상을 보였으며 백주에 현직 국회의원이 총격 테러를 당해 숨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웨일스 등이 연방 체제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가 해체의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돌아보면 국민 통합의 능력이 미흡한 정치 지도자가 국가의 미래보다는 정략적 관점에서 논쟁 가능성이 큰 국가적 현안을 활용하려 한 데서 모든 문제가 비롯된 측면이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집권 연정의 내부 갈등을 봉합하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총선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캐머런 총리는 재집권에는 성공했으나 `브렉시트’를 둘러싼 논의는 그로서도 통제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흘러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영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와 지성인들이 EU 탈퇴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영국의 유권자들은 결국 이성보다는 가슴에 울리는 호소에 따랐다.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이민자들이나 외국 탓이라는 선동은 언제, 어느 국가에서나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는 경제난의 탈출구가 되기는커녕 이를 가중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영국 정부는 EU 탈퇴 후 2년 이내에 일자리 50만 개가 사라지고 국내총생산(GDP)은 3.6%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영국 유권자들은 경제에 대한 불만에서 EU 탈퇴를 결정했지만, 이 결정이 다른 어느 나라에 앞서 영국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영국에서 전개된 브렉시트 논란과 국민투표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정치 지도자는 역사의 흐름을 통찰하는 혜안과 국가적 논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통합의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이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규모가작으면서도 개방의 정도는 매우 큰 우리 경제는 대외변수의 영향에 유달리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당장 외환·주식·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모니터해 예상되는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또 수출 등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과 함께 한·EU 자유무역협정의 개정 등 필요한 후속조치를 강구하는 데도 정부와 기업, 민간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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