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한자 바다해(海)는 물수(水)와 매양매(每)가 하나가 되어 이룬 글짜다. 每는 母와 같아서 어둡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출산과 결혼이 어두운 때와 관계가 있어 그렇다고 한다. 또한 중국 북방사람들이 볼 수 있던 바다는 검고,크고,어두운 것이었다. 옥편에 나와 있는 풀이가 이렇다. 밝은 햇빛 아래 펼쳐진 바다는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밤바다는 두렵다. 중국 북방사람들은 이런 바다만 보고 살았는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한다.
너울은 ‘까치놀’이라고도 한다. ‘바다의 사나운 큰 물결’ 이라거니 ‘수평선에 희번덕거리며 세차게 이는 물결’이라거니 하는 풀이다. 까치의 뱃바닥 같이 하얀 물결이어서 ‘까치멀기’라고도 한다나 보다. 어쨌거나 바다의 두려운 현상이다. 전광용의 ‘흑산도’에 너울 이야기가 나온다. “떠나는 뱃길이 썰물이라면 돌아오는 뱃길은 밀물이었다. 개펄은 장작 횃불에 야시(夜市)처럼 환했다. 그러나 간밤부터 몰아치는 돌개바람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너울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태질을 했다.”
이밖에도 위험 요소는 너무나 많다. 이안류는 안전수역과도 무관한 것 같다. 갯고랑에 빠질 수도 있다. 적조현상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 맹독성 해파리 떼도 바람을 타고 하루에 4㎞ 안팎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고 한다. 독성 문어도 경계대상이다. 조심해야한다. 바다는 즐거운 곳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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