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회장을 지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책임론에 휩싸인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가 돌연 휴직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월 AIIB의 리스크 담당 부총재(CRO)로 임명되면서 산은을 떠난 지 불과 4개월여 만이다. 그가 휴직하게 된 이유와 자세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홍 부총재는 최근 국내 언론매체들의 대면, 전화 접촉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지난 25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AIIB의 첫 연차총회에도 불참하는 등 사실상 ‘은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한 끝에 휴직 결정을 내린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신생 AIIB의 부총재라는 자리가 홍 부총재 개인의 신상에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는 고심 끝에 중국이 주도하는 AIIB 참여를 뒤늦게 결정했다. 5개 부총재 자리 가운데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려 37억 달러 (약 4조3000억원)의 분담금 출연과 미국과의 관계 훼손 우려 등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른 대가라고 할 수 있다.
홍 부총재는 대우조선의 부실이 불거진 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산은 회장으로 재직할 때 대우조선 지원 과정에서 산은은 들러리 역할만 했고 정부와 청와대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가 파문이 커지자 며칠 뒤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지난 15일 발표된 감사원의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관리실태’에 대한 감사결과에서는 산업은행이 분식회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시스템이 있음에도 이를 사용하지 않는 등 사실상 대우조선의 부실과 회계부정을 방임한 것으로 지적됐다. 감사원은 다른 두 명의 전·현직 산은 임직원과 함께 홍 부총재에 대한 감사결과 자료를 금융위원회에 통보해 향후 인사자료로 활용토록 조치했다.
홍 부총재의 AIIB 휴직이 이런 일련의 사태 전개와 관련이 있을 개연성은 커 보인다. 대우조선의 부실에 관한 책임 규명의 과정에서 홍 부총재가 심적 부담이나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국내에서 초대형 금융비리 스캔들에 연루된 입장에서 국제금융기관의 고위직을 맡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홍 부총재는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정부가 후속조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충분히 협의하고 중국을 비롯한 AIIB 회원국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당한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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