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그 경계의 생생한 기록
  • 이경관기자
삶과 죽음… 그 경계의 생생한 기록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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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최악의 상황 선택 기로 담아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나는 분명히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죽음을 막연하게 여겼던 의대생 시절, 죽고자 하는 생각은 갖가지로 변형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시 나는 밤마다 강박적으로 글을 지어댔다. 그 글들은 벌판에서 던진 부메랑처럼 멀찍이 날아갔다가 죽고자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홀연히 귀결되었다. 그 터널을 간신히 몇 번 빠져나오고 나니, 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모든 과를 순환해야 하는 인턴생활 1년은 금방 지나가버렸다. 곧 내가 평생 몸담을 분야를 적어 내야 했다. 나는 죽음과 가까운 몇 개의 과 중에서 고민하다가, 별 망설임 없이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다.”(‘서문’ 중)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 응급의학과 의사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될 삶의 한 순간에 대한 기록을 풀어 놓는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매순간 ‘선택’에 직면하고, 수없이 많은 ‘만약’이 가슴을 옥죈다. 순간 다른 처치를 했다면, 감압이 성공했다면, 지병만 없었더라면, 수술방만 있었더라면, 조금만 늦게 출혈이 진행됐다면, 곁을 지키던 나를 봐서 환자가 좀더 버텨주었다면.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최악을 피할 수 있었던 일들.
 남궁인 작가의 ‘만약은 없다’는 그런 만약의 순간에 대한 ‘글쓰는 의사’의 기록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죽음에 관해, 그리고 2부는 삶에 관해 쓰인 글들이다. 마치 두 권의 책을 읽듯 결을 달리하는 1부와 2부는 죽음을 마주하는 고통과 삶의 유머를 넘나든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한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의 세계가 있다.
 1부는 응급실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응급실은 복통이나 열상과 같은 가벼운 증상으로 찾기도 하지만, 긴박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다. 그만큼 의사와 환자의 대화는 긴장감이 넘치고, 상황에 대한 묘사는 피를 솟구치게 하고 울음을 쏟게 만들며, 때로는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멈추게 한다. 그것이 응급실이라는 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고통을 마주하는 고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죽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한 50대의 남성, 1개월 시한부를 앞둔 담도암 말기 환자의 교통사고처럼 우연이라기엔 잔인한 죽음의 진실을 비롯해 의사에게 메스가 지닌 의미와 소방대 구급대원이나 응급상황관리사의 상담을 수치로 평가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1부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겪은 죽음의 편린들이 눈에 보이듯 그려진다.
 “그녀와 충돌한 차량의 운전자라며 다시 들어온 환자. 그는 바로 어제 돌려보낸 담도암 말기 그 남자였다. 집에서 확연한 죽음을 느끼고 낡은 소형차에 시동을 걸러 생의 마지막 운전을 시도한 그는 병원으로 오는 길에 찾아온 극심한 통증으로 마주오는 차와 추돌했다. 골절하나 발견되지 않은 그의 엑스레이 필름 가득 찍힌 전신을 뒤덮은 암 조직. 저자는 생명과 우연에 대해, 죽음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죽음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도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라며.”(36쪽)
 2부인 알지 못하는 세계는 의사로서 직업적으로 겪은 흥미로운 이야기부터 응급실에서 만난 재미난 사건들까지 유머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텔 가운을 입고 나타난 성기골절 환자, 조현병을 앓고 있는 50대 여성, 2010년 월드컵 당시 응급실의 분위기와 군부대 진료실의 이야기 등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응급실이란 곳이 희로애락이 담긴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책은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이 마주했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다.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처럼 숨결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묘사해낸 글들은 ‘기록의 경이를 넘어서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인간극장’이다.
 삶이 지쳐 포기하고 싶을때, 남궁인의 글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속에 있는 또 다른 ‘나’가 그래도 인생은 한 번 신명나게 살아볼만한 곳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남궁인 지음. 문학동네. 316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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