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여름철이면 수박과 참외는 물론이고 박, 호박, 콩, 담쟁이에 칡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제 세상 만난 듯 싶어진다. 순을 뻗어가며 세력권 넓혀나가기에 딴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쑥쑥 잘도 자란다. 그러나 이를 말과 글로 표현해야하는 사람으로서는 때때로 난감해지고 만다. 넝굴이냐, 넝쿨이냐? 덩굴이냐, 덩쿨이냐? 따지면 헷갈린다. 정답만 말한다. ‘넝쿨’ 또는 ‘덩굴’이다.
많고 많은 덩굴식물 가운데 박에 눈길을 빼앗긴 이가 있다. 누구나 잘 아는 이어령 씨다. 그는 박을 일컬어 ‘초가지붕 위의 마술사’라고 했다. 속을 다 도려내고 껍데기만 남을 때 다기능 생활용구가 된다는 얘기다. “샘에 띄우면 두레박이 되고 뒤주 속에 넣으면 됫박이 되어 도량형기의 구실을 한다”고 썼다. 간추려 더 소개하면 박은 종지도 되고, 사발도 되며 술잔, 탈바가지도 된다. 깨어지면 똥바가지가 되어 다시 또 요긴하게 쓰인다고 했다. 시쳇말로 ‘멀티’다.
이 귀물(貴物)이 트랙터의 삽날에 풍비박산되고 말았다. 엊그제(7월 30일) 일어난 일이다. 참외밭을 갈아엎으려고 몰려든 트랙터들의 포진이 살벌하고 생경스럽기만 했다. 마치 집게발을 들어 올려 적의를 드러내는 갑각류처럼 보이게 하는 보도사진이었다. ‘사드 갈등’이 빚어낸 참상이다. 평생 참외만 길러온 농민들도 “시들어 죽으나 밟혀 죽으나 이판사판”이라며 팔을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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