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흘러 위안부 할머니 단 한명만 남는다면…?’
  • 이경관기자
‘시간 흘러 위안부 할머니 단 한명만 남는다면…?’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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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아홉번째 장편 ‘한 명’ 리뷰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그녀도 따라서 고백하고 싶었다. 나도 피해자요, 하고. 그때마다 그녀는 가제손수건으로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 자매들을 만날 때마다 그 말이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올랐지만 꾹 삼켰다.”(145쪽)
 예술은 때로, 뺦보다 더 적나라하고 사실적일 때가 있다.
 영화 ‘암살’, ‘동주’, ‘귀향’, ‘덕혜옹주’, 다음주 개봉할 ‘밀정’까지. 최근 스크린 속에 일제강점기, 당시 어두웠던 우리 역사가 자주 다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위안부 한일 합의’가 이뤄졌지만, 일본과 우리정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위안부를 본격 문학의 장으로 끌어낸 소설가 김숨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 ‘한 명’이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숨 작가는 그간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계층을 집중적으로 탐구해왔다.
 “피해를 증언할 수 있는 할머니들이 아무도 남아 계시지 않는 시기가 올 것이므로 소설을 통해 그런 점에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싶고, 그것이 문학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 그녀는 300여 개에 이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들을 재구성해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한 서사를 완성시켰다.
 실제 증언으로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킨 이 소설은 위안부 할머니가 이 세상에 단 한 명 살아있게 됐을 때, 그 한 명이 세상에 남은 또 다른 한 명을 만나러 가기 위해 고뇌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의 잔혹성과 내상을 오롯이 전한다.
 또한 저자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사건이 주는 충격과 함께 살아남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그 이후의 삶’을 조명한다.

 “그녀는 한 명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여기 한 명이 더 있다는 걸 세상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증언이라는 걸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왜 이러나 싶기도 하다. 여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가, 이리 숨겨놓고 저리 숨겨놓고 있다가. 이렇게 늙어가지고. 죽을 때가 돼가지고.”(234쪽)
 시간이 흘러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뿐인 어느 날을 시점으로 한 이 소설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히지 않고 살아온 어느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다.
 80여 년 전 열세 살 소녀였던 그녀는 마을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다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들에게 잡혀 만주로 끌려간다. 그날 이후, 강제로 끌려온 다른 소녀들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육신을 난도당하는 성적 학대와 고문을 당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참혹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그녀는 아픈 기억을 영원히 짊어진 채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삶은 여의치 않았다.
 자신의 과거가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형제들까지도 피해 홀로 힘겹게 살던 그녀는 조카의 부탁으로 재개발 예정 구역에 기거하며 이름도 없는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티브이를 통해 공식적인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그녀는 이제야말로 세상에 혼자 남는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지금껏 숨겨왔던 자신의 존재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마지막, 그녀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사경을 헤매는 마지막 위안부 생존자를 만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가는 길 위에서 그녀는 삼인칭으로만 존재해온 ‘한 명’에서 마침내 ‘풍길’이라는 열세 살 때 지녔던 제 이름을 찾게 된다. 그녀가 마지막 생존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동안 자신을 놓아주지 않던 과거와의 만남이자 그 시절로 돌아가 위안소에서 희생된 그 모든 ‘한 명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던 것.
 그 과정은 그녀가 비로소 자신이 갖고 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으로 다시금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80이 넘은 늙은 소녀가 세월 속 켜켜이 쌓인 한(恨)을 토해낸다.
 어떠한 기사보다, 더 사실적인 김숨의 소설 앞에 우리가 부끄러운 것은 아마도 사회의 외면 속에 외롭게 싸워야했던 소녀들의 힘겨운 숨이 들려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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