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사에 입사거부서 제출합니다”
  • 이경관기자
“귀사에 입사거부서 제출합니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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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쥘리앵 프레비외 채용공고 35건·입사거부서 35통 모은 책 발간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미대를 갓 졸업한 프랑스 청년이 면접을 보러 갔다가 면접관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길을 가는데 죽어있는 고양이를 봤습니다. 슬픔을 느낍니까?”
 일종의 심리테스트를 통해 기본 인격을 판단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청년을 ‘비인격적 대우’라는 생각에 모멸감을 느낀다.
 청년은 그 후, 채용공고를 내는 회사에 일종의 ‘입사거부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자기소개서’ 격인 ‘지원동기서’의 편지 형식을 빌어 채용공고를 낸 업체를 조롱한 것이다.
 바로 취업시장에 절망 대신 풍자를 던져, 프랑스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쥘리앵 프레비외 ‘입사거부서’가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됐다. 그는 무려 7년 동안 1000통 넘는 입사거부서를 썼다. 일부 회사로부터는 답장도 받았다. 그리고 채용공고 35건과 자신의 입사거부서 35통, 회사의 답장 25통을 모아 책으로 펴내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저는 귀사의 채용공고에서 몇 가지 오류를 발견하였습니다. 귀사는 구직자들에게 “성공적인 삶을 원한다면…”이라고 하고는 입사 후 6~9개월간 법적 최저임금의 65%를 약속하셨습니다. 성공적인 삶과 박한 임금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성립되어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귀사에서 제안한 일자리를 거절하며 추후에는 이런 종류의 큰 실수가 없기를 바랍니다.”(‘쥘리앵 프레비외가 보낸 입사거부서’중에서)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회사들의 채용공고 35개, 회사들에 보낸 입사거부서 35통, 회사로부터 받은 답장 25통을 담고 있으며, ‘채용공고-입사거부서-답장’ 세 가지 형식의 반복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보낸 편지 중 답장을 받지 못한 10통의 편지를 뒤에 이어서 실었다.
 별다른 해명이나 설득 없이 편지를 있는 그대로 담아 한 사회의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 청년의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의 편지는 재치와 풍자가 넘친다. 회사들이 올린 채용공고를 보면서 한 문장, 한 단어의 뜻을 따져가며 그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지적하는가 하면, 옆에서 친구처럼 말을 건네며 채용공고에 담긴 회사의 바람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이야기한다. 또 편지에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가득 채우거나 기호들을 나열해 채용공고를 낸 회사들을 비웃기도 한다.
 그가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의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가 그를 품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회보장제도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쥘리앵 프레비외는 비록 직업은 없었지만 자신만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다.
 또한 ‘입사거부서’와 그의 기획에 프랑스의 각종 언론 매체들과 정·재계의 학술지들이 주목했고, 프랑스 사회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 결과 2011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 사관학교인 시앙스포에서 주는 ‘시앙스포 현대예술상 관객상’이 쥘리앵 프레비외에게 돌아갔다. 한 젊은이의 상상력과 용기 뒤에는 이에 간섭하기보다 오히려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한 사회의 포용력이 있었던 것.
 입사거부서를 통해 예술가로서 인정받은 쥘리앵 프레비외는 현재 대학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만의 작품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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