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오늘 우리는 아버지를 잃었다.’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서거에 태국 국민들이 보인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실감나게 전달한 표현이다. “그 분은 아버지였다. 자식들을 위해 무엇이든 최고를 해주고 싶어하는 그런 아버지였다”고 태국의 한 여성이 CNN 마이크에 대고 울부짖은 통곡 역시 푸미폰 국왕에 대한 태국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해준다.
푸미폰 국왕이 숨을 거두기까지 입원했던 방콕 시리랏 병원 앞에는 행운의 핑크색 옷이나 국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옷을 입고 국왕의 쾌유를 비는 군중이 모여 있었다. 13일 국영TV를 통해 쁘라윳 찬오차 총리가 푸미폰 국왕 서거 소식을 전하자 검은옷을 입은 시민들이 병원과 길거리로 나와 흐느껴 울거나 통곡했다. 국민들의 태국 전국이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국민들이 검은 ‘상복’(喪服)으로 갈아 입고 명복을 비는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푸미폰 국왕 서거로 태국 경제가 위축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의류시장은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검은 상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탓이다. 태국 국민들은 날씨가 더워 검은 옷을 좋아하지 않지만 국왕 서거 애도기간을 1년으로 정하자 상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시가의 두배가 넘는 가격을 붙인 상점이 대부분이지만 소비자들은 불평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이 옷을 1년은 입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국 국민들의 전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 떠나는 푸미폰 국왕은 행복한 군주(君主)였다.
수시로 벌어지는 쿠데타 때면 왕궁 문을 열어 쫓기는 시민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정쟁을 벌이는 정치인들도 왕 앞에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신성한 권력이 형성됐다. 1992년 군부쿠데타 때 왕은 군부 세력과 시민 세력 지도자를 왕실로 불러 “그치라”는 말 한마디로 혼란을 수습했다. 그만큼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태국 국민의 푸미폰 국왕에 대한 애도는 국왕의 후계자인 마하 바지랄롱코른(64) 왕세자에 대한 실망과 반감으로 이어진다. 외아들로 푸미폰 국왕에 의해 ‘왕세자’로 책봉됐지만 국민 사이에 신망이 없다. 온 몸에 문신을 하고, 청바지 차림에 문란한 사생활로 국민들 눈밖에 난지 오래다. 세 번 이혼 경력도 국왕 등극에 장애다.
왕실·관료 등 기득권층으로 이뤄진 ‘옐로 셔츠’ 내 강경 세력들은 왕세자 대신 셋째 마하 차크리 시린튼 공주 혹은 왕세자의 네번째 부인이 낳은 아들에게 왕위 승계를 원한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새 국왕의 치세는 내년 10월 13일 시작된다.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태국의 국왕 책봉은 태국의 문제다. 푸미폰 국왕의 서거와 태국 국민들의 애도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대통령복(福)이 지지리도 없는 우리 국민이 가엽다는 생각 뿐이다. 푸미폰 국왕처럼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도자를 한사람이라도 갖고 싶은 심정이다.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