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계절
  • 정재모
사과의 계절
  • 정재모
  • 승인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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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사과는 왜 제사상 과일에 이름이 없는가. 어동육서(魚東肉西)를 들먹일 계제이면 세트처럼 따르는 게 조율이시(棗栗梨枾)의 순서 매김이다. 빠뜨리지 말고 올려야 하는 과일이 대추 밤 배 감이라는 거다. 붉은 과일은 동쪽에 차리고 서쪽엔 흰 것을 놓으라(홍동백서/紅東白西)는 진설 상식의 가르침도 엄연하다. 붉은 과일의 대표는 아무래도 사과일 듯싶다. 그런데 왜 제사상 과일목록엔 없는 걸까.
제상 차림표에서 배제됐을 뿐 아니라 사과를 지칭하는 한자(漢字)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선 ‘沙果’라고 쓰거나 중국에서 평과(萍果) 또는 빈과(瀕果)라고는 한다. 그렇지만 사과를 지칭하는 단자(單字)는 찾아내기가 어렵다. 수많은 과일을 지칭하는 글자가 존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궁금한 일이다. ‘말씀’이 있은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선악의 과실일 만큼 오래전부터 사람과 함께 해온 사과다. 뿐만 아니라 맛 또한 어떤 과일과 비교해 봐도 처지지 않는다.

국어학자 한성우 교수는 저서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사과가 이처럼 홀대 받는 까닭을 간명하게 풀었다. ‘이름이 없다는 건 그것이 지시하는 사물이 없다는 거다. 사과 원산지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이니 꽤 일찍 들어왔을 것 같으나 19세기 말에 도입됐다.’ 아닌 게 아니라 사과는 1892년 미국 선교사가 들여와 경북지방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1655년 조선 효종 때 인평대군이 연경에 사신 갔다 오면서 가져왔다는 야사 기록도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엔 토종 능금이 있었다. 비슷하나 사과는 아니다. 지금도 능금과 사과는 혼용되지만 엄밀히는 잘못이다. 어쨌거나 경북지방이 주산지인 사과는 도입 백년 남짓 만에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 종류의 다양화와 맛의 혁신을 이뤄냈다. 비록 조율이시에 들지 못해도 조상 제상에 사과 안올리는 집 없다. 누가 뭐래도 사과는 가을과일의 으뜸이다. 사과의 계절이 왔다. 명품사과 주산지 청송 문경 영주를 비롯한 경북도내 곳곳에선 지금 탐스럽도록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청송에선 오늘부터 나흘간 사과축제도 열린다. 신선미와 함께 수확체험도 즐기며 싼값에 사고파는 난장이다. 부석사 주변과 문경에서는 이미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사과는 많은 경북 농가들의 효자요, 경상북도의 자랑거리임에 분명하다. 깊어가는 가을, 사과원의 그 빨간 열매들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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