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현실 끌어안고 던지는 사랑 노래
  • 이경관기자
가혹한 현실 끌어안고 던지는 사랑 노래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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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성석제 여덟번째 소설집 ‘빭리도 괴리도 업시’ 출간 화제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이야기꾼 성석제가 여덟번째 소설집 ‘빭리도 괴리도 업시’를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빭리도 괴리도 업시’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 인용한 것으로,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청산으로 숨어들길 소망했던 이가 있었다면, 2016년 성석제의 소설 속에는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그 어떤 대단한 환희나 통렬한 절망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어떤 ‘사건’ 혹은 ‘사람’과 맞닥뜨리는 인물들이 있다.
 표제작 ‘빭리도 괴리도 업시’는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살아가던 중년의 ‘나’ 앞에 옛 친구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만인의 똥개’ ‘신데렐라’로 취급받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치이던 ‘너’. ‘나’는 그런 ‘너’가 거추장스럽지만 어쩐지 ‘너’와의 마지막 끈을 완전히 놓지는 못한다. 어느 날, ‘나’는 금발의 동성 애인을 둔 정상급 재불 화가가 되어 돌아온 ‘너’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너’는 화려한 외양과 성공의 표상들로써만이 아니라, ‘나’에게 대놓고 ‘커밍아웃’을 해서 나를 휘청거리게 한다.
 “난 작가라는 것들이 뭐 특별한 줄 알았지. 알고 보니까 별거 아니더구만. 그깟 소설 나부랭이 못 쓰겠네 안 써지네 하면서 살려달라고 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더니 단물 쪽 빨아먹고 나서는 싸늘하게 배신을 때리네.”(‘블랙박스’ 중)

 소설 ‘블랙박스’에도 모래처럼 허물어져가는 일상을 견디다가 돌연 나와는 너무 다른 인물을 만나 전기를 맞는 인물이 있다. 언제부턴가 창작의 샘이 말라 도무지 소설을 완성할 수 없게 된 중견 작가인 내 앞에 동명이인인 ‘너’가 나타난다. 내 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해준 카센터 직원이었던 ‘너’는 살갑게 다가와 호형호제하는 것은 물론 내가 앓아누운 사이 쓰다 만 소설을 마무리해주기까지 한다. 소설작법을 어디서 배운 적도 없고, 세상에 문명(文名)을 떨쳐보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없이 그저 몸으로 쭉쭉 소설을 써내려가는 동명이인의 ‘너’. 그날 이후 ‘나’는 ‘너’에게 본격적으로 소설 대필을 맡기게 되는데, 이 위험한 거래도 결국 파국을 맞는다.
 소설 ‘먼지의 시간’에서는 성석제표 해학과 웃음을 느낄 수 있다. 대자연 속의 명상가이자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임을 자처하는 M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된 ‘나’는 입만 열면 잘난 척 일색에 ‘구세활인염’이라는 만병통치약까지 파는 ‘정신적 스승’이 아니꼽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나’와 M은 핑퐁을 하듯 긴장감 넘치는 말씨름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묘한 애증의 감정마저 싹튼다.
 ‘납북 어부 간첩 사건’으로 불리는 실제 사건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소설 ‘매달리다’는 묵직한 서사로 독자들을 밀어붙인다.
 “넌 잠에서 깬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본다. 아침 먹으면서 보고 점심 먹으면서 보고 간식 먹으면서 보고 저녁 먹고 회식하면서 보고 퇴근하면서도 본다. 너는 보고 또 본다. 스마트폰은 네 시간과 지각과 판단력의 요람이자 무덤이다.”(‘나는 너다’ 중)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설 ‘나는 너다’는 어쩌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져 있는 ‘중독’ 증상일지 모를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미움이 우리를 견디게 하지 않을까. 성석제의 소설은 가혹한 현실의 문제들을 끌어안고도, 그 속에서도 끝내 살아가고 마침내 사랑하려는 자들을 위한 노래다. 
 성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인간은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랑의 산물이고 사랑을 연료로 작동하는 사랑의 기계이다. 살아가는 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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