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진, 석 달 만에 옛일 되었나
  • 정재모
경주지진, 석 달 만에 옛일 되었나
  • 정재모
  • 승인 201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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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새해 정부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2일 이후 눈에 띄는 기사 한 꼭지를 읽었다. 9월 12일 발생한 경주지진을 계기로 수립 중인 지진방재종합대책 관련 내년도 예산증액 안이 90%가 잘려나갔다는 뉴스와, 이로써 금명간 나올 지진방재 종합대책안이 무용지물이 될 처지라는 소식이다.
규모 5.8의 9월 경주지진은 근세 이후 국내에서 보지 못한 대형 재난이었다. 일대에 큰 혼란과 피해를 남겼고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심었다. 자연스럽게 지진방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불같이 일었다. 방재대책 추진에 대한 욕구 또한 거세었다. 이에 따라 국민안전처는 부랴부랴 사업 계획을 마련,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를 거쳐 내년도 지진방재예산 1525억원 증액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종단계에서 무려 88%인 1349억원이 삭감되고 말았다. 달랑 176억원만 승인된 거다.
국민안전처가 입안한 지진방재 내년도 예산 증액분이 이처럼 무참하게 잘린 것은 기획재정부의 반대 때문이란다. 정부 예산안이 이미 정기국회에 넘어온 상태에서 경주지진으로 인한 방재 대책예산으로 국민안전처는 추가로 증액을 요구했을 거다. 이를 받아 국회행정안전위원회는 정부 측에 증액을 요청했으리라.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손사래를 침으로써 요구 대비 10% 남짓한 액수만 겨우 확보하는 데 그친 게 아닌가 한다.

국민안전처가 경주지진을 계기로 내년도 방재예산에서 증액하고자 했던 예산은 여러 가지 항목으로 구성됐을 거다. 그 중에는 소방서 건물의 증개축 예산이 많이 들어 있었다. 다수 소방서 건물들이 지은 지 오래 돼 내진 설계가 안 돼 있거나 지진에 취약한 구조물이어서 이들 건물들을 신·개축할 필요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기재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소방관서나 지자체 상황실 등의 내진보강 사업비는 국가예산에서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지자체가 자체예산으로 해야 할 일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방서와 재난상황실의 내진보강 사업은 전면 백지화되고 말았다는 게 국민안전처의 탄식이다. 참고사항이지만, 지진인프라 구축 예산 요구액은 올해 699억원, 작년 513억원이었으나 각각 전액 삭감된 바 있다.
냄비처럼 급하게 달아올랐다가 순식간에 급랭하는 우리네 성향은 지진방재 문제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는가 보다. 지진담론이 한동안 회오리치면서 숨 가쁘게 뜨거워졌던 내진보강 여론이 짚불처럼 사그라드는 데는 석 달이 채 걸리지 못한 셈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몰고 온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지진에 대비해야 한다는 외침과 관심은 정부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서도 그새 사라진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진재난 예방을 위한 예산 좀 늘리는 문제에 대해 기재부가 난색을 보이자 국회가 그처럼 맥없이 입 닫아버릴 수는 없을 터다.
요 며칠 사이 전국 지방신문들을 보면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자기네 출신지역 SOC 관련 정부예산 얼마를 얻어냈다는 자랑을 다투어 쏟아내고 있음을 본다. 자신들의 노력과는 무관해 보이는 예산의 액수까지 마치 자신들이 확보한 것인 양 내세우는 모양새가 가소롭다. 그런 숫자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옮기는 데 급급한 지방언론 행태는 일단 차치해두자. 그에 앞서 지진방재 예방사업 예산 같이 절실하고 엄중한 예산을 재정 형편 열악한 지자체에 떠넘겨버리는 기획재정부의 이해 못할 행태 앞에선 호통 한번 치지도, 설득을 하지도 못하는 국회의원들이 뭐 그리 자랑스러운 예산확보 성과가 그리도 많은지 낯부끄럽지도 않은가 싶어진다.
국민안전처와 관련부처는 경주지진 이후 지진방재대책개선 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며 종합적인 방재계획을 짜고 있다. 태스크포스는 활성단층연구, 내진보강, 지진관련 조직개편, 한국형 내진시스템 연구개발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을 마련하고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 추진에 필요한 예산 증액이 버그러져버린 이상 이 대책도 쓸모없는 종이쪼가리가 될 처지다. 그래놓고도 장차관과 국회의원들은 지진 같은 재해가 나면 어김없이 현장에 나타나 주민들을 향해 온갖 약속 늘어놓는 꼴을 낯 두껍게도 다시 연출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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