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항구성 벗어 던진 불안정한 세계 씁쓸한 단면
  • 이경관기자
현실의 항구성 벗어 던진 불안정한 세계 씁쓸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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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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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준환 네번째 소설집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불안정한 세계 속 수많은 가능성을 안고 유동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1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뒤, 현재 작가와 번역가로 활동 중인 소설가 서준환이 최근 네번째 소설집 ‘다음 세기 그루브’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작가는 편집증을 앓는 안드로이드, 기억상실증에 걸려 떠도는 남자 등을 다룬 수록작을 통해 실제와 망상 사이,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며, 현실의 항구성을 벗어 던진 불안정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특히 소설집 화자의 대부분이 ‘자기 진술’의 형태, 즉 타자와의 대화가 아닌 ‘독백’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감으로써, 화자의 언술 바로 앞에 독자를 앉힌다.
 “나는 이제부터 나를 압도하고 있는 자술의 무대 위에서 그런 모놀로그를 펼쳐가야 하는 배우다. 배우는 우울하고 신경증적인 안드로이드이다. 그러니 무대의 고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
 소설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화자는 인간 같은 로봇, 즉 ‘안드로이드’의 존재이다.
 흔히 인간과 로봇의 대립 속에서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서사의 수많은 공상과학소설이 있었다면, 이 책은 인간의 가장 아픈 고리인 혼란스러운 자아, 거기서 비롯된 정신 질환을 안드로이드가 닮을 수 있다는 상상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의 안드로이드는 무대 위에서 모놀로그의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의 말에 취해 이 말, 저 말 갖은 말들을 쏟아내는 작품 속 유일한 화자이기도 하다.

 이 독백에서 안드로이드는 인간에게서 마음의 병을 옮아 신경정신과를 방문한 이야기, 거기서 만난 ‘마빈’이라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 ‘강가딘’이라고 불렀던 엄마, ‘판다’라 불리는 와이프의 이야기 등을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의 많은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확신할 수 없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어지럽게 이어진다.
 표제작 ‘다음 세기 그루브’의 화자 ‘나’는 ‘나는 나다’라는 시를 준비 중인 시인이다. ‘나는 나다’라는 문장이 말해주듯, 나는 나-시인으로서의 자신, 개별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의식이 유난히 강한 사람이다.
 이는 ‘시 쓰기’를 향한 태도에서도 드러나는데, 그에게 시를 쓴다는 행위는 “주체의 절대적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나만이 창조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적 우주”이다.
 시 쓰기를 위해 골방에 틀어박혀 지내던 그는 디지털 피아노의 음향,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일렉트로닉 음악 등 자신의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소리를 접하면서 창작의 고유성과 독자성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 쓰기로 채워져야 할 순수한 창작의 영역에 모방, 짜깁기 등으로 구성된 ‘혼종적인’ 소리·텍스트가 자리하게 된 셈이다.
 또 다른 소설 ‘창백한 백색 그늘’은 목사 손정목 씨의 사고를 두고 그 진실을 밝히려는 형사의 이야기다. 그는 자술서를 유독 중요한 자료로 여기기에, 목사의 아들 J 씨의 자술서를 중심으로 이 작품은 꾸려진다.
 작가의 말에서 서준환은 “글 쓰는 이로서 나는 아무 할 말도 없는 사람이다. 내 글은 어떤 ‘할 말’에서 시작하지 않고 아무 할 말도 없다는 데서 끝난다. 누구도 결백하지 않다.”고 썼다. 
 서준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308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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