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이상규
시의 글씨가 머금었던 먹물이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차츰 펼쳐지더니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늘에 떠도는 내 여윈 영혼이 모여 생소한 문장으로 찍어낸 먹물 빛이 바래져 가고 있다. 날아가던 새들이 하나의 바다색 점으로 바뀐다. 점으로 점멸된 그 영상은 아무 흔적도 기억도 없다. 양장으로 제본이 된, 시인의 시집 갈피에는 텅 빈 공간과 한 치 앞으로 볼 수 없는 짙은 안개와 물빛. 그 위로 활자들이 점점이 나는 검은 새가 되었다가는 소멸한다. 구원을 찾으려고 읽었던 시 한 편, 입김으로 훅 불어보니 망막에 허무하게 지워지는 새의 영상뿐. 소란스러운 파도 소리가 입으로 밀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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