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여사, 그리고 택호(宅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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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여사, 그리고 택호(宅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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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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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

[경북도민일보]  한국어는 존칭과 호칭이 발달한 언어이다.
 유교의 본 고장, 공자의 나라, 중국에서 당신은 니, 좀 더 신경쓴다면 닌 정도이다. 학교에서 중국유학생들만으로 구성되는 영어강좌를 몇 학기간 강의한 적이 있다. 중국학생들이 필자를 부르는 것도 그냥 쉬짜오쇼우(徐敎授)이다. 우리말로 서교수이다. 중국어에는 님에 해당되는 말이 없는 줄 알아도 한동안 반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중국유학생들은 나이가 몇 살 많든 어리든 그냥 이름을 부르는데 한국학생들은 형, 동생, 선배, 후배를 철저히 따진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나이를 신경써야 하고, 그에 따라서 형, 동생의 호칭을 신중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오히려 중국의 동쪽 나라 한국과 남쪽 나라 베트남에서 오히려 호칭, 존칭과 관련해서 그 언어적 용법이 더 복잡하다. 필자는 요즘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중인데 이제 겨우 호칭이 정리가 되었다. 베트남어에는 나, 너라는 말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상대방과의 관계와 서열에 따라 바뀐다. “내가 너에게 감사한다” 라는 말을 할 경우, 이 말은 하는 내가 남자라면, “오빠가 여동생에게 감사한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 어느 나라의 언어든 호칭은 정말 중요하다. 영어에서 Mr.(미스터)는 존칭이지만 한국에서 미스터 박, 미스터 김이라고 부르면 이건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대통령은 각하이며 그 부인은 영부인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통령님으로 바뀌었고 최근까지 영부인이라는 단어는 사용된 듯하다. 그런데 문대통령의 취임이후 김정숙여사가 스스로 여사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한 이유가 참신하다. 영부인의 부인은 대통령의 부인으로서의 호칭이지만, 여사는 여성으로서 독립된 인격으로 인식되는 호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어에서도  여권신장운동(feminism)으로 남자의 호칭 뒤에  여성의 호칭으로 여성화 어미인 ‘ess’를 붙여 오다 통칭어, 또는 독립된 단어가 생겨났다. 남자 비행기승무원인 ‘steward’의 끝에 여성화어미 ‘ess’를 붙여서 여자 비행기승무원으로 ‘stewardess’를 사용하다가 이제는 남자, 여자가 아닌 그냥 승무원인 ‘flight attendant’라는 통칭의 단어가 사용된다. 영부인보다는 여성으로서 독립된 존재의 의미로서 영부인이 아닌 여사라는 단어의 사용은 언어학적,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신선하다.
 옛날,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있었다. 이는 또한 사람이 갖추어야 4가지 덕목이 되기도 하였다. 신(身)은 신체의 건장함, 또는 사람의 몸가짐이나 행동거지이다. 둘째, 언(言)은 사람의 언변, 말솜씨이다. 모든 것이 말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면 된다. 셋째, 서(書)는 글씨로서 옛날에는 중요했겠지만 오늘날 컴퓨터로 대신하니 그 중요성은 떨어진다 하겠다. 넷째, 판(判)으로 사람의 판단을 가리킨다. 평소의 사고방식이나 판단능력이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게하고 이성의 정도를 저울질하게 하는 것이다.
 올해 5·18 기념식에서 아버지를 잃은 유족에게 걸어가서 포옹하고 같이 울어 주던 문대통령의 행동, 신(身)에서, 대통령의 싸인을 받으려고 가방을 뒤적거리면서 공책을 꺼내는 어린이를 위해서, 무릎을 굽히고 옆에서 가방을 잡아주면서 이를 기다리는 대통령의 행동, 신(身)에서,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줄서서 식판을 받아들고 직원들과 같이 식사하는 대통령의 행동, 신(身)에서 신뢰를 느낀다.

 이를 보고 ‘코스프레’니, 가식이라고 한들 상관없다. 가식이라도 못하는 사람은 못하고, 안하는 사람은 안한다. 스스로 영부인에서 여사로 자세를 낮추니, 대체로 국민들은 공감을 하고 환영한다. 언(言)도 되었다.
 신(身)이나 언(言)은 통과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書)는 그렇다 치고 이제 판(判)이 남았다. 국정전반에 대하여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하였다고 한다. 대선 때 표를 얻지 못했던 경상도지역에도 반응이 좋다고 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대통령의 판(判)은 개인을 넘어 한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판(判)이다. 대통령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막 문재인호는 출발하였다. 어떠한 판(判)을 통해서 어떠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지 이제 우리가 그의 판(判)을 지켜보자.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호칭으로 택호(宅號)가 있다. 나이가 든 여성을 대상으로 부르는 호칭으로 주로 그 고향이름을 붙인다.
 필자의 할머니는 경북 칠곡 신동이 고향이라 사람들이 신동댁으로 부르는 것을 들었다. 남자가 관직에 있었다면 그 관직에다 댁을 붙여서 불렀다.
 건너 마을에 ‘최진사댁 셋째딸’이라는 노래도 있고 ‘맹진사댁 경사’라는 영화에서 남자의 관직에다 댁을 붙이는 문화를 볼 수 있다.
 초대 대통령부인인 프란체스카여사는 유럽의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오스트레일리아로 착각해서 ‘호주댁’이라고 부른 것을 보니 영부인을 보고 ‘댁’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국민들이 친숙하고 편하게 문대통령이 어디에 살든 그 집을 ‘대통령댁’이라고 부른던지, 영부인인 김정숙여사의 고향이 강화도라 하니 ‘강화댁’으로 부르던지, 훗날 국민의 환영 속에서 퇴임 후 국민들과 같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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