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따라 유유자적… 편안함 속 새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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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따라 유유자적… 편안함 속 새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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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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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현 (주)원덕 대표-이웃나라 베트남 이야기<2>
▲ 육지의 하롱베이라 불리는 짱안은 장관을 자랑하는 바위산과 그 아래 평화로이 강이 흐른다. 사진은 배를 타고 짱안을 둘러보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

[경북도민일보] 세계 3대 음료 중 하나이면서 원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큰 상품은 바로 커피다.
현재 세계 커피 연간 거래량은 약 860만t으로 하루 소비량은 29억잔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세계 커피 생산량을 봤을 때 전체 총 생산량은 14만3300포대다. 약 860만t을 생산했고 그중 1위인 브라질은 4324만포대로 전체의 30.16%다.
베트남은 2750만포대로 전체 생산량의 19.18%를 차지한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커피 수출 2위 국가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9세기 말 선교사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됐고, 프랑스인 사업가에 의해 커피농장이 만들어지면서 재배지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산된 커피는 대부분 프랑스 본국으로 수출됐고 일부커피가 내수로 유통되면서 베트남 커피 문화가 시작됐다.
초창기에 Arabica종을 심었으나 잘 자라지 못해 Robusta와 Mitcharichia종을 들여오면서 커피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Robusta는 어려운 환경에도 잘 자라는 강인한 품종이며 쓴맛이 강하고 향이 떨어져 인스턴트커피로 많이 사용 된다.
20세기 중반 일어난 디엔비엔푸 전투에 크게 패한 프랑스는 물러가고 오랜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베트남은 1986년 경제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Doi moi)를 앞세워 재건에 힘쓰게 된다. 산업기반이 전무했던 베트남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특용작물인 커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94년 커피 왕국인 브라질에 닥친 소금안개와 1997년까지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여러 해 동안 커피 값은 폭등하게 됐고 커피가 마진이 높은 작물로 인식하게 되면서 정부의 지원하에 중남부를 중심으로 Robusta 재배지를 넓혀가게 된다. 2012년 베트남은 브라질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Robusta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가 된다.
한때 세계 커피 생산의 85%를 차지하며 세계 커피 값을 좌지우지 하던 브라질은 21세기에 들어 베트남의 거센 추격을 받는다.
베트남은 20년 전 세계 생산량 중 불과 5%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20%를 넘어서고 있다.
어른이면 아메리카노. 인생의 쓴 맛을 아는 사람은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누가 그랬을까. 누군가가 그랬을까? 어쩌면 미성년자에서 오롯이 어른이 됐음을 뽐내고 싶었던 걸까. 딸기 생과일주스만을 마시던 고교생은 20살이 돼 당당하게 술집을 갈 수 있었고 어쭙잖게 ‘에스프레소요’라 주문하곤 돈과 미각을 잃은 채 ‘아메리카노요’라 말한다. ‘연하게 해주세요’를 덧붙임을 잊지 않은 채.
매일 아침 눈뜨는 게 힘들었던 애송이 성인은 제 시간에 깨워주던 엄마의 부재를 대학교에 와서 절실히 깨달았다. 알람을 13개 맞춰놓기는 기본이요, 모닝콜을 부탁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다 맛 본 에스프레소는 강력한 한방의 알람이 됐고 이러다 위도 한방이겠다 싶었던 애송이 성인은 아메리카노로 하루를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30대 입문자는 지금도 생각한다. 아침에 쉽게 일어났더라면 ‘10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에스프레소로 내 인생에 커피는 없었을 거야’라고.

▲ 베트남 연유커피.

하나에 빠지면 하나만 파는 성격을 가진 애송이 성인은 커피는 아메리카노란 이상한 세뇌에 갇혔고 그렇게 20살 첫 베트남에서 신세계를 맛보게 됐다.
‘1일 1쌀국수’를 실행한지 일주일 쯤 지났을까 학교를 가기 전 집 앞 쌀국수 가게에 들어섰을 때 항상 맡아 온 쌀국수 냄새와 더불어 달콤한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함께 시킨 베트남에서 마신 첫 연유커피는 아직도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 날의 아침은 매번 감탄하며 먹었던 쌀국수의 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때부터였다. ‘어른은 아메리카노도 마시지만 연유커피도 마시지’로 바뀐 것이.
매일 아침 아메리카노로 시작하던 하루는 베트남 여행에선 항상 카페쓰어다(cafe sua da, 연유커피)로 시작한다.
맛있어서 하루에 2~3잔 마시다간 하루에 2~3분도 못자는 카페인 과다 복용으로 불면증 부작용이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맞다. 지극히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렇게 30대 입문자는 한 손엔 쓰어다커피(연유커피)를 들고 비가 내리지 않는, 날 좋은날 하노이와 1시간30분 떨어진 짱안(Trang An)으로 향했다.

▲ 꽃으로 수 놓아진 짱안 안내판.

짱안은 육지의 하롱베이라 불린다. 석회암 카르스트지형으로 형성된 이 지역은 강을 따라 좌우로 깎아 자른 듯 한 절벽과 아기자기한 바위산들이 겹겹이 이어져 장관을 이뤘으며 바위산 아래로는 8개의 수상 자연동굴이 있다.
짱안 코스는 카약을 타고 약 2시간 정도 이동해 8개의 수상 자연동굴을 다 지나가게 된다. 중간 중간 절 같은 곳에서 쉬고 구경을 하며 이동했는데 육지의 하롱베이라 불릴 만큼 정말 아름다웠고 눈을 돌리는 곳곳마다 사진첩에 나올 만한 경관이었다.
그러나 짱안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꼭 모자를 챙겨 가야 한다. 천장이 없는 카약을 2시간이나 타야 했고 중간중간 지나가는 자연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피하기에 좋았다.

짱안을 다녀 와서 느낀 것은 물이 아주 깨끗해 물 안에 해초들이 보여 신기했으며 2시간의 카약체험에 노를 젖는 직원분의 노고에 감사함과 어느 순간 발로 젖고 있는 신기함, 살을 좀 덜 찌울걸 하는 죄송함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한번쯤 다녀오기에 좋았던 짱안은 나에게 처음의 황홀함을 마지막은 무한반복되는 풍경에 지루함을 선물해 줬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적절한 시간은 1시간이라는 걸 알게 된 30대 입문자 올림.
짱안이 카약을 타고 2시간이라면 빠른 걸음으로 20분이면 돌 수 있는 하노이의 상징 호수인 ‘호환끼엠’호수를 다음날 찾았다.

▲ 호환끼엠 호수 야경.

하노이는 크고 작은 호수들을 많이 볼 수 있어 ‘호수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그 중 호환끼엠 호수는 하노이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호수다.
호수 주위로 많은 녹음이 어우러져 있어 더위를 피하기도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도 한다.
호환끼엠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15세기 여 왕조를 세운 레러이는 호수의 거북이에게 받은 검으로 명나라 군사를 물리쳐 승리로 이끌었다. 이 후 승리를 알리기 위해 호수를 찾았고 호수 밑에서 올라 온 거북이가 그 검을 물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환검(還劍)’이라 해 ‘검을 돌려줬다’는 뜻을 가진 베트남어로 ‘호환끼엠’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때마다 호수에서 거대 거북이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 베트남인들 사이에선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호환끼엠 호수의 북단에는 붉은색 목조 다리로 연결돼 호수에 떠 있는 ‘응온손’이라는 작은 섬을 볼 수 있다.
응옥손은 1865년 세워진 옥산 사당이다.
13세기 원나라의 침략에 대항해 싸운 성인의 넋을 기리기 위함이고 또 전투, 학문, 의술의 신 등을 함께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이 본전 옆에는 1968년 호환끼엠 호수에서 잡혔다는 길이 약 2m, 무게가 250㎏에 달하는 거북이의 박제가 있다. 이 거북이가 호환끼엠 호수에 얽힌 전설 속 검을 물어다 준 거북이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호환끼엠 호수의 장점은 아침 점심 저녁시간 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오전 시간의 호환끼엠은 상쾌하고 싱그럽다면 점심시간의 호환끼엠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을 두는 사람들로 정답고 여유스럽다.
그리고 저녁의 호환끼엠은 조명들의 화려함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야경과 연인들의 달콤함, 직장인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즐기는 화끈함들이 공존하는 그러한 곳이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분위기로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고 밤마다 열리는 야시장은 베트남의 음식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였다.
한국 생활에 치여 매번 휴가 때 도망치듯 떠날 수 있는 곳은 나에게 베트남이다.
그 때마다 내 손에는 쓰어다커피가 있었고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호환끼엠을 걷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행위만으로도 위로가 됐기에 항상 베트남을 찾았던 것 같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시작 된 베트남 커피문화는 아라비카 종으로 라떼를 즐기던 프랑스 사람들을 따라하고자 했으나 재배되는 로브스타 종에 설탕을 따로 듬뿍 넣는 불편함 대신 당분이 센 연유를 넣음으로써 힘든 노동을 이겨내는 힘이 됐다.
프랑스인들을 따라 흉내를 냈으나 그로 인해 좀 더 진화된 커피의 맛을 그들은 개발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다루는 식기나 도자기와 같은 격식까지는 따라 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핀’이라는 거름망을 개발해 어떤 컵이든 위에 얹어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그들만의 형태를 갖췄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베트남의 거리 포장마차 카페에서는 그렇게 내린 커피를 비닐봉지에 담아 빨대를 꽂아 팔고 있으며 단골손님인 30대 입문자다.
그 옛날 베트남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된 노동의 버팀목을 위해 연유 커피가 탄생됐듯,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깨닫는 이치와 생각은 즐거운 순간도 있으나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졌을 때가 아닐까하는 30대 입문자는 한 손에 들린 커피 하나로 위로를 받고 ‘이 커피가 세계2위 생산량을 자랑하는 원두지’하며 ‘내일은 뭐할까’ 생각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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