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업(善業)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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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업(善業)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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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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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살로메 작가

[경북도민일보]  때늦게 박상륭 소설가의 부고를 들었다. 선생은 작품성 하나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신 문단의 큰 별이셨다.
 하필이면 그 무거운 소식을 한 유명 제약회사의 오너가 자신의 운전수에게 폭언을 일삼았다는 뉴스와 같이 접했다. 애도의 마음이 훑고 간 자리에 뭔가 뿌연 막 같은 것이 가로막았다.
 선생과는 직접적인 사연이 없으니 내 애도가 절절함에 가닿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이 막연하고 갑갑한 막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마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는 선생의 대표작 이를 테면 자욱한 안개 숲 같았던 ‘죽음의 한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막막한 경외감 같은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맵고 찜찜한 연기 속에서 가진 자들의 이른바 ‘갑질’ 행태를 바라봐야 하는 갑갑한 분노쯤으로 연결될 것이다. 막막한 경외감에서 오는 조심스러움과 갑갑한 분노에서 오는 부글거림의 감정이 동시에 내 몸과 마음을 뒤덮었다. ‘강자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공분 때문인지 선생의 죽음 소식보다 소설의 어떤 부분이 더 오래 맘에 머물렀다. 교만으로 가득하고 편견으로 뒤틀린 우리 자화상에 대한 경종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탐욕스런 영감이 착한 종을 데리고 서낭귀신에게 목숨 무게를 재러 갔다. 부자이니만큼 자신의 목숨 무게가 천한 종보다는 무거울 것이라 확신하면서. 귀신은 두 사람 무게가 꼭 같아 아무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고 했다. 욕심쟁이 영감은 종과 자신이 같은 목숨 무게라면 어째서 종놈은 못사는데다 종살이를 면치 못하냐고 따진다. 서낭귀신이 말한다. 목숨이나 혼의 무게는 재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같다고. 다만 ‘선업(善業)의 무게’는 달아줄 수 있다고.  무게를 달아보니 종인 선업의 무게가 노인보다 삼사백 배나 더 무거웠다. 영감 업의 무게는 가랑잎 한 잎에 지나지 않았다. 귀신이 말한다. 혼 위에 업(業)을 업고 오는 것이라 영감의 업을 종놈에게 판다고 해도 너무 가벼워 저승조차 대신 가 줄 수 없노라고. 이 세상엔 같은 업 무게는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영감이 울며 재물로 원한을 씻겠노라고 발길을 돌리지만 귀신은 노인장을 불러 세워 다그친다. 어디를 가느냐고, 저승사자가 와있으니 따라갈 채비나 하라고.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독본이 ‘죽음의 한 연구’였다. 난해한 철학서이자 불가해한 경전이지만 이해하고자 하면 부분적으로 와 닿는 것이 분명 있었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 강자와 약자가 있다. 약자가 강자에 의해 환난의 울타리에 내몰렸다면 약자에게 동정이 가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강자는 약자 앞에서 가만있기만 해도 강자 자체로 군림한다. 강자가 아무 눈치 주지 않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약자는 이미 심리적 노예가 된다. 약자는 그들의 쓰레기통이나 샌드백이 아니다. 거친 소리를 집어 담거나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막아내는 물건이 아니다.
 환멸(幻滅)로 가득 찬 진창을 헤매는 고뇌의 인간이 끝내 죽음으로써 환멸(還滅)에 다다르고야 마는 구도의 길. 소설을 넘어서는 소설이자 답 없는 비유로 가득한 암호 속에서도 박상륭 작가는 말한다. 목숨이나 영혼의 무게는 같아도 업의 무게는 같을 수가 없다고.
 생소한 문법으로 장황하게 얘기하는데 뭐라 형언하기 힘든 파장 같은 게 일렁인다. 낯설고도 독창적인 문체 앞에서 내 안에 있는 안개 또는 연기라는 허상을 걷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해독 불가능한 박상륭 식 활자 앞에서 차라리 무지는 아름다운 고통이다. 고통의 맛도 즐길만하다. 
 큰 작가는 죽음으로써 감당키 어려운 당신 존재의 업 무게를 늘려놓았다. 사람의 존재감은 목숨 자체가 아니라 살면서 지속된 업의 무게에 달려 있다. 선업은 힘 있고 재물 있다고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그 경중이 달라진다. 죽음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업의 무게를 떠올려 본다.
 죽음에 대한 연구는 죽음 자체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존재 이유에 대한 선업 돌탑 쌓기 프로젝트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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