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우리 옛땅… 위대한 정복국가 고구려는 없었다
  • 모용복기자
구리, 우리 옛땅… 위대한 정복국가 고구려는 없었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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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新동북공정 현장을 가다- 1.압록강을 따라 단동으로

압록강 너머 지척엔 북녘 땅… 北 아이들 모습에 가슴 울컥
강 하구 위치 고구려 박작성, 만리장성 시발점이라 홍보
고구려 최대 城인 오골성은 유적 없애고 돈벌이로 전락
고구려 역사 지우기 혈안인 중국의 新동북공정 현주소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무엇이기에 지구촌 이곳 저곳에서 상대방 역사의 부정과 왜곡을 넘어 심지어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역사전쟁에 혈안인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고 심양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부터 보고 느끼게 될 천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남긴 역사의 파편들 속에서 그 진실을 만나보게 되리라.
동북아지역은 지금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역사전쟁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자국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기에 각국은 양보없는 치열한 전장(戰場)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총성없는 역사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현재 전장(戰場)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는 종군기자의 심정으로 역사전쟁의 현장에서 그들이 찬란했던 우리 역사와 조상들의 혼을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생생한 기록을 통해 우리의 대응책과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 한국전쟁 때 끊어진 단동철교(오른쪽 기둥만 남아 있는 부분)와 새로 지은 철교. 새 철교 위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물품을 실어날으는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중국이 대외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유엔제재에 동참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북으로부터 끊임없이 물품을 수입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압록강 건너엔 북녘 땅이
 모든 족속들이 발아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 뿔 달린 투구를 쓰고 말을 탄 채 왼손으론 커다란 활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대륙을 노려보며 박차를 가하니 천지에 말발굽 소리가 진동하고 산천초목이 떨었다. 드넓은 대륙을 향해 말을 달리던 그가 갑자기 말머리를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띠고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연민이 밀려왔다. 가슴 한 켠에 통증이 느껴졌다.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첩첩 구름 아래로 망망대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현재 우리땅을 넘어 옛날 우리땅으로 들어서고 있음이 분명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부산을 출발해 심양공항에 도착한 것은 점심 때가 조금 지난 뒤였다.
 공항에는 이번 취재에 동행하기로 한 조선족 안내인 박명군 씨가 플래카드를 들고 마중나와 있었다.
 그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뒤 고구려 산성을 보기 위해 곧장 단동(丹東)으로 향했다.
 3시간 여 차를 달리니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들이 늘어선 시가지가 나왔다. 도로는 비교적 넓직하고 외제차들도 많이 눈에 띄는데 건물들은 하나같이 낡고 붉은색과 흰색의 배합이 천편일률적이어서 다소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물이 수백 킬로미터를 여행한 끝에 서해로 흘러들기 전 잠시 머무는 곳.
 압록강의 강폭은 넓었다 좁았다를 반복하면서 끝없이 이어졌다.
 강 너머 지척(咫尺)엔 북한 땅이다. 멱을 감는 북한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낚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북한 주민들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가슴이 뛰었다.
 그들을 보며 박명군 씨는 전날 있었던 북한 6차 핵실험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지진이 난 줄 알았어요. 15초 가량 집이 흔들릴 만큼 심한 진동을 느꼈는데 뉴스를 보고나서 그게 북한이 핵실험을 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김정은에 대해 중국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 심지인 조선족들까지 아주 감정이 좋지 않아요.”
 박 씨는 북한 핵실험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나 경제 등에 대해 한국사람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차로 이동하는 내내 박근혜 전 대통령 얘기며 문재인 대통령, 사드문제 등 국내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40대인 그는 고향인 용정에서 병든 노모를 봉양하며 틈틈이 관광객 안내일을 하며 심양이나 장가계, 인천에도 가끔씩 다녀간다고 한다. 한 때 한국에도 건너가 돈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몇 년 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허리를 삐끗하고는 그 때 이후로 고향인 용정으로 돌아와 눌러앉게 됐다고 한다.
 

▲ 압록강 하구에 위치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길목을 통제하는 요충성 역할을 했던 고구려 산성 박작성. 중국은 이 산성을 호산장성이라 이름을 바꾸고 만리장성 동쪽 시작지점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새로 지은 관문 건물 벽에 이러한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사라져가는 고구려 山城
 고구려 성(城) 중 하나인 박작성(泊灼城)은 요녕성 단동 시내에서 20여㎞ 떨어진 관전현 호산이란 곳에 위치해 있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해 강을 거슬러올라오는 길목을 통제하는 요충성이다.
 박작성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에서 자주 등장한다.
 문헌에 의하면 645년(보장와 4년) 대규모 고구려 침략이 실패한 지 3년 후인 648년 당 태종은 설만철로 하여금 3만여 군사를 이끌고 박작성을 공격케 했다. 설만철이 압록강을 거슬러 박작성 남쪽 40여리 지점에 진영을 갖추자 박작성 성주(城主) 소부손이 이에 대항해 1만여명의 군대로 성을 지켰으며, 고구려 장군 고문이 오골성과 안시성 군대 3만여기를 거느리고 구원하였다고 한다.
 박작성 입구에 도착하니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는 한자로 새겨진 덩치 큰 명판이 먼저 맞는다. 중국측이 박작성 대신 붙인 이름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長城’(만리장성의 중국어)이란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웅장하게 지은 관문 건물 곳곳에 나붙은 ‘만리장성이 동쪽에서 시작되는 곳’이라고 쓴 붉은 현수막을 보고 나서야 왜 호산장성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고구려를 자국역사에 편입시키려는 新동북공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 중 하나다.
 중국은 1990년부터 성을 발굴하기 시작해 석벽과 돌로 쌓은 우물, 목선과 같은 고구려의 유물을 대거 발견했다. 하지만 장성의 동쪽 끝이라 하여 복원하면서 고구려와 관련된 유적들은 없애 버렸다. 지금은 정상에 자그마한 망루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한국 등 외국인들 뿐만 아니라 자국민들에게까지 ‘만리장성 동쪽 시작지점’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안내원 박 씨에 의하면 중국 정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중국인들조차 콧방귀를 뀐다고 한다. 연세께나 있는 어른들은 호산산성이 고구려 성(城)이 뻔한데 중국 정부가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만약 중국측 주장대로 박작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 되면 그 길이가 무려 2만리가 넘는데 그게 말이 되냐”며 ‘소도 웃을 일’이라고 혀를 찼다.
 하지만 지금은 실상을 아는 노년층들이 생존해 있어 중국의 억지주장이 완전히 먹혀들고 있지 않지만 한 두 세대가 흐른 뒤면 역사적 사실로 굳어져 버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박작성에서 애하를 따라 30여㎞를 올라가면 봉성시 동쪽 5㎞ 지점에 위치한 봉황산성(鳳凰山城)이 나온다.
 가을 초입 저녁 노을에 비친 봉황산의 웅장한 모습은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 그대로였다.
 고구려인들은 병풍처럼 타원형으로 둘러쳐진 험준한 능선을 따라 천연성벽 87곳, 인공성벽 86곳을 돌로 쌓아올렸다. 전체 산성 길이가 1만5000여m에 달하고 석축 성벽만도 7500m에 이른다.
 본래 고구려인들은 이 성을 오골성(烏骨城)으로 불렀으며 현재 남아있는 중국 내 고구려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산성의 규모나 성벽 축조 방법에 있어서 전형적인 고구려 성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성에는 남문과 북문이 있는데 지금은 남문이 있던 자리는 거의 사라지고 북문 쪽에는 아직도 성벽의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하지만 중국이 제멋대로 갖다붙인 봉황산성이란 이름처럼 오골성의 미래도 불안하기는 박작성과 매한가지다.
 성 내에서 발견된 많은 고구려 유물들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그 소재를 알 길 없다.
 입구에 새로 건립한 웅장한 건물들은 박작성과 판박이다. 이 산성이 중국 것임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함이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고구려의 유적을 돈벌이로 이용하면서 한편으로는 고구려 역사 지우기에 혈안인 중국의 두 얼굴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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