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중국역사’라 쓰고 ‘돈’이라 읽는다
  • 모용복기자
고구려… ‘중국역사’라 쓰고 ‘돈’이라 읽는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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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新동북공정 현장을 가다 - 4.돈벌이로 전락한 고구려
▲ 집안 시내 국내성에서 2.5㎞ 지점에 있는 환도산성. 복원을 위함인지 성벽을 철망으로 덮어놓고 관광객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집안 우산촌 오회분 5호묘, 현재 유일 벽화 볼 수 있어
결로현상 등 훼손상태 심각, 고분은 잔디 식재 야단법석
웅장한 규모의 집안박물관, 고구려 中역사 홍보 産室
국내성터 대부분 사라지고 환도산성 복원은 제멋대로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무엇이기에 지구촌 이곳 저곳에서 상대방 역사의 부정과 왜곡을 넘어 심지어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역사전쟁에 혈안인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고 심양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부터 보고 느끼게 될 천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남긴 역사의 파편들 속에서 그 진실을 만나보게 되리라.
동북아지역은 지금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역사전쟁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자국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기에 각국은 양보없는 치열한 전장(戰場)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총성없는 역사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현재 전장(戰場)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는 종군기자의 심정으로 역사전쟁의 현장에서 그들이 찬란했던 우리 역사와 조상들의 혼을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생생한 기록을 통해 우리의 대응책과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오회분묘. 잔디를 심기 위해 모든 고분마다 그물을 덮어씌워놓았는데 정작 훼손상태가 심각한 오회분 5호묘 내부 벽화는 그대로 개방하고 있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저들의 속내가 괘씸하기 짝이 없다.

 - 고구려 벽화를 만나다
 오회분묘는 장군총과 멀리 않은 길림성 집안시 우산촌에 있다. 다섯개의 고분이 투구를 엎어놓은 것처럼 이어져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니 라면을 먹고 있던 젊은 여성 안내원이 우리를 안내한다. 생김새로 봐서 조선족 여성이 틀림없는데 말을 건네도 묵묵부답이다.
 안내원을 따라 이동하는 도중 좌우에 있는 모든 고분 위에 그물을 덮어씌어놓은 모습이 기이하게 여겨져 물으니 고분에 잔디를 심기 위해서라는 짧은 설명이다. 아마도 고분 일대를 공원으로 만들어 관광지화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의도는 오회분 5호묘를 개방해 벽화를 공개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은 2004년 고구려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오회분 5호묘를 공개하지 않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공개하고 있다.
 현재 유일하게 벽화를 볼 수 있는 고분이다.
 철문을 열고 안내원을 따라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냉기가 온몸을 감싼다.
 9월이라 해도 아직 한낮은 여름날씨나 다름없어 서늘한 기운이 피로를 잠시 잊게 해준다.
 전실(前室)을 지나 연도를 통과해 현실(玄室)로 들어가니 벅찬 감동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침내 고구려 벽화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미창구 장군총에서 벽화를 보기 위해 잡초를 헤치며 입구를 찾아 헤맸지만 입구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실망감이 무덤 속 냉기와 함께 녹아내리는 듯했다.
 1000여 년 전 고구려인들이 그린 벽화.
 그림의 내용은 당시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세계와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방형 돌을 깎아 모줄임양식(한 벽의 중간지점에서 인접 벽 중간 점을 기다란 돌로 돌로 덮어 모서리를 줄여나가다 천장을 막는 양식) 천장에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등 종교적인 상징물 외에도 당시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제륜신(수레를 만드는 신), 대장장이 신, 농사신들이 그려져 있다.
 군데군데 움푹 패인 검은 자국이 있어 물으니 본래는 용의 눈 등에 커다란 보석이 박혀 있었지만 관광객들이 다 빼가고 지금은 구멍자국만 남아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이다.
 박명군 씨는 관광객이 아니라 중국인의 소행이라고 귀띰해 줬다.
 이 곳도 사진촬영은 물론 금지다.
 그래도 말을 주고 받거나 시간을 지체하는 데 대한 제재와 간섭이 덜하니 아마도 조선족 여성 안내원 몸 속에도 같은 단군(檀君)의 피가 흐르고 있는 까닭이리라.
 감동도 잠시 그림 위에 물방울이 맺히는 결로현상이 심하고 곰팡이 균 침식으로 얼룩도 많이져서 훼손이 심각한 상태로 보여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가다간 오래지 않아 소중한 우리 유산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개방으로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다 보니 빚어진 현상일진대 중국 당국이 왜 빨리 조치를 안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고분에 그물을 덮어씌워 잔디를 입힌다고 부산을 떠는 저들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유물을 전시해 놓은 집안박물관. 고구려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홍보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산실이다.

 - 동북공정의 産室 집안박물관
 오회분묘에서 차로 약 5분여 거리에 집안박물관이 있다. 집안에서 발굴된 고구려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집안박물관 앞에 서면 우선 건물 규모에 압도된다. 건물 뿐만 아니라 부지도 꽤 넓고 공원도 잘 꾸며져 있다.
 집안의 고구려 유물을 모아놓은 곳이라 해서 자그한마 건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매표소에서 나와 여성 해설자를 따라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과연 고구려 유물들이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입구에 있는 광개토태왕비 탁본(拓本)이 먼저 맞는다.
 광개토태왕비의 일제때 모습과 현재 유리벽으로 둘러싸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사진들, 그 중 태왕릉에서 출토된 명문벽돌과 ‘태왕’이란 글자가 새겨진 청동방울이 눈길을 끈다.
 또 고구려의 용맹함과 강성함을 보여주는 각종 전쟁무기들, 다양한 모양의 금장식도 눈에 띈다.
 여성 해설사는 앞서 5회분묘와는 달리 우리가 유물을 보느라 조금만 지체해도 짜증스런 어투로 채근했다.
 사진촬영은 물론 금지고 일행들이 대화하는 것조차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치를 주곤 했다.
 중국인 해설사가 한국 방문객들을 상대로 이렇게 딱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집안박물관은 전시물들을 통해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대내외에 주입시키는 산실(産室)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그들이 목표로 하는 동북공정의 의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고조선이 한나라에서 설치한 한사군의 하나인 현도군에서 출발한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이었고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문물을 수입한 정황을 담은 전시물이나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고구려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韓中 고대사에 대해 잘 모르는 관람객이 들으면 그대로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시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고구려 유물 박물관을 크게 지은 이유다.

▲ 길림성 집안시내에 있는 국내성터. 성벽 사방으로 높은 건물이 들어서 안내판이 아니면 국내성터란 사실을 알 길이 없다.

 - 쇠락한 국내성과 환도산성
 현재 집안 시내에는 국내성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하지만 도시 건물숲 안에 사람 키보다도 낮은 돌담이 일직선으로 길게 놓여 있는 것이 너무나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만약 안내문이 없다면 가장 오랫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 수 없다.
 기존 자료를 보면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성벽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됐는지 한심한 노릇이다.
 중국이 무차별적인 개발을 하면서 성벽을 마구 훼손한 결과다.
 그랬던 것이 동북공정 이후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마나 남은 성벽을 발굴해 보존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역사의 역설(力說)이 쓸쓸한 따름이다.
 고구려 역사를 지우기 위해 시작된 동북공정으로 인해 오히려 국내성이 일부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 천운(天運)이랄 수밖에.
 집안 시내에서 서쪽 방향으로 약 2.5㎞를 가면 환도산성이 나온다.
 노령산맥의 우뚝솟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고구려의 전형적인 고로봉식 산성이다.
 평시에는 국내성에 거주했다 적의 침입으로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환도산성으로 대피해 농성전을 펼칠 목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표소에서부터 공안이 따라붙었다.
 정문을 지나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5분여를 걸어올라가니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점장대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단부 몇줄을 제외하고는 무너진 곳에 아무렇게나 돌을 쌓아올려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 환도산성 내에 있는 점장대. 기단부를 제외하고 돌을 아무렇게나 쌓아올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점장대에서 성 안쪽을 바라보면 꽤 넓은 곳에 발굴된 궁전터가 보인다. 유사시 충분히 임시 수도로 사용했을 만큼 성 내부는 넓어 보였다.
 오른쪽 성벽은 돌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지 모두 철망을 덮어놓았다. 돌의 모양으로 봐서 아마도 성벽을 복원 중인 것으로 짐작된다.
 출입금지라 산성에 올라가 더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일부는 시공현장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고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의 더욱 교묘해진 동북공정 속에 환도산성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 지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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