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안톤 체호프를 소환하는 이유
  • 경북도민일보
지금 이 순간, 안톤 체호프를 소환하는 이유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7.1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강명수 포항대학교 교수

[경북도민일보]  지금 우리 앞에는 ‘장기저성장사회’가 펼쳐져 있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불안·우울과 강박관념에 빠지기도 하고 관태기(관계+권태기) 징후를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모든 걸 유보·유예상태로 두면서 미래를 낙관적으로도 비관적으로도 전망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같은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면서 ‘지금 여기의 나’에 집중하기도 하고 절망·회의·분노를 걷어내고 희망·긍정·화해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희망과 절망의 문턱에 서 있고 자기에 대한 회의와 긍정의 경계에서 서성거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분노와 화해의 문지방을 넘나든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지금 이 순간, 안톤 체호프를 소환하고자 한다. 
 체호프는 가르치고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같이 아파하면서 함께 답을 찾아나간다. 문제해결을 위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의 시학’을 전파한다.
 체호프와 그의 작품 ‘나의 삶’을 매개로 해서 ‘우리의 일과 삶의 세계’를 성찰하고 이 시대의 현실을 통찰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아울러 ‘진정한 (역사의)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해보자.
 ‘체호프는 의지박약한 평범한 작가’(로자노프)가 아니다. ‘체호프는 임의의 방법으로 인간의 희망을 죽인 작가’(쉐스토프)는 더더욱 아니다. 체호프는 ‘황혼의 가객이면서 동시에 강하고 쾌활한 언어의 예술가’로서 ‘삶의 근원적 문제를 묘사한 작가’이자 ‘인간의 본질을 직시한 작가’다.
 체호프는 개별적 인간의 삶과 자유를 사랑했다. ‘하나의 소우주와도 같은 개인’의 자아를 억압하는 규정된 관념이나 편향된 이념을 혐오했다. 개별적 인간들의 다양한 삶을 향해 열려있는 이 작가의 예민한 감각은 소통과 이해, 관심과 배려를 갈구하는 평범한 인간들에 대한 ‘그치지 않는 사랑’으로 전이된다. 이 사랑의 프리즘으로 체호프는 밝음과 어두움, 무거움과 가벼움, 성과 속, 희망과 절망의 문턱에 서있는 본원적 인간을 탐구한다.
 그래서 이 작가는 ‘일상적 삶’을 연결고리로 해서 무기력, 나태, 범속성, 허위관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 자아의 양상을 오롯하게 표현했다. 현실에서 탈출구를 트지 못해, 비상구를 찾지 못해 신음하는 주인공 자아의 양상을 드러내기도 하고(6호실, 문학선생),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주인공 자아의 양상을 표출하기도 한다(나의 삶: 지방도시민의 이야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약혼녀). 특히 체호프는 ‘나의 삶’에서 지방도시의 일상적 삶과 결부된 주인공 자아의 양상을 형상화한다.

 ‘나의 삶: 지방도시민의 이야기’에서는 지방도시/ 수도, 지방도시/ 시골이라는 공간이 서로 포개지면서 ‘일상적 삶과 결부된 주인공 자아의 양상’이 드러난다. 아울러 서로 포개지는 공간과 주인공 자아를 매개로 19세기말 러시아에서 행해진 지식인 사이의 논쟁(진정한 진보란 무엇인가?)이 전면에 등장한다.
 주인공 미사일에게 “진정한 진보란 결국 사랑이며 도덕적 규율을 순결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사일에겐 지방도시라는 공간이 도덕적 범주와 결부되고 ‘진보의 실험장’으로 인식된다. 주인공은 ‘노동하는 삶,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내면의 소중한 것들을 ‘지방도시의 일상’에서 실현하고자 애쓴다.
 주인공의 이러한 노력은 한편으로는 톨스토이즘을 구현하고자 하는 몸부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진정한 진보를 체현하고자 하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과정이야말로 주인공 자신의 ‘참된 자아에게로 향하는 길’이자 ‘자기긍정과 타인과의 화해’로 나아가는 도정인 것이다. 종국에는 지방도시라는 공간에서 ‘이방인이 아니라 정주민으로 정착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희망의 노정’이 된다.
 체호프는 이러한 노정을 ‘과정의 시학’으로 구축함과 동시에, 인간이 ‘축제가 아닌 일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를 되새김질하도록 이끈다. 관념과 이상으로부터 현실과 실재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저자 의도를 넌지시 엿보이기도 하면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일과 삶의 세계’를 성찰하고 이 시대의 현실을 통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체호프를 호명하며 소환해 보았다. 우리 모두가 ‘참된 자아에게로 향하는 길’이자 ‘자기긍정과 타인과의 화해로 나아가는 도정’ 그리고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희망의 노정’에 서는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이때, 이런 모습을 그려본다. 지방도시/수도, 지방도시/ 시골이라는 공간을 포월한 ‘나와 너’가 ‘진정한 진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지역사회에서 고투하는 모습. 진영논리마저도 초월한 ‘나와 너’가 이 사회의 향방표지를 바로 세우고 진영정치에 파열음을 내는 모습. 파편화되고 분절화 된 개인을 극복하고자 ‘나와 너’가 지역공동체와 연대해 ‘우리’가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
 다가오는 2018년에는 ‘성찰적 진보’인 ‘나’와 ‘합리적 보수’인 ‘너’가 연대해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생활정치에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이 다시 기운생동 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