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와 문화의 길 걸으며 격세지감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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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와 문화의 길 걸으며 격세지감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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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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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복의 일본 규슈올레 탐방기 <2>
▲ 오카성(岡城) 성터 위에 만들어진 신사와 기념석 모습.

 

[경북도민일보] 4월 21일, 호센지온천호텔 유모토아(湯本屋)의 새벽은 맑고 따사로운 기운이 감돈다. 격자창 넘어 여명(黎明)이 방안으로 스며들며 마른 다다미 바닥이 온기를 머금은 듯 아침이 밝았다.
일본 료칸(旅館)에서 숙박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네 온돌과 또 다른 맛이기도 하지만 일본다움을 체험할 수 있어 여행의 참맛을 알 수 있다.
매일 남탕과 여탕이 바뀌는 독특한 목욕문화가 있는 온천욕을 하기 위해 유카다(일본식 잠자리가운)를 입은 채 긴 복도를 따라 온천탕으로 들어서는 한옆에 다소곳이 기모노(일본여성들이 입는 전통의상)를 입고 앉아 인사하는 인형위에 ‘목욕탕’이라는 한글팻말이 친절한 일본의 이미지를 더해주고 있다.

▲ 두번째 코스인 오쿠분고 코스 출발점인 아사지역 앞에 있는 규슈올레 안내판.

깔끔하고 정갈한 유모토야의 아침밥을 먹고 오늘의 코스인 오쿠분고(奧豊後)코스를 걷기 위해 오이타(大分)현 분고오노시(豊後大野市) 기차역 JR아사지(朝地驛)으로 간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2016년 6월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으로 폐쇄되었다는 아소산(阿蘇山)의 위용이 들어나고 연봉으로 이어진 아소산 모습이 부처님 얼굴을 닮았다는 설명에 다시금 호기심을 느끼면서 오늘의 일정을 가늠해 본다.
아사지역(驛)으로 오는 도중에 있는 하라지리폭포와 현수교를 보지 못해 아쉽다. 하라지리폭포는 폭이 120m, 높이 20m에 달하는 큰 폭포로 평지에서 바로 떨어지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직탕폭포를 연상케 하는 폭포로 내려오는 상단의 주상절리와 부근의 현수교가 꽤 알려진 곳이라 한다.
규슈올레 두 번째 코스는 시작점인 아사지역(驛)에서 다케다시(竹田市) 성하 마을까지 가는 12㎞구간으로 소요시간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4~5시간이 걸린다. 아사지역(驛)은 작고 소박한 무인역으로 관광안내소를 겸하고 있어 여기서 스탬프도 찍고 안내책자도 받을 수 있으며 도시락 주문도 받아준다.
아사지역(驛)을 뒤로하고 어김없이 나오는 ‘간세’와 올레 화살표를 따라 비포장 길을 걷는다. 지나온 길 한 옆에 돌을 다듬어 쌓은 자그마한 돌을 신(神)으로 모신 신사(神社)가 있다. 석실 같은데 큼직한 돌이 들어있고 꽃을 꽂아 놓은 꽃병과 잔, 향로로 보이는 사기그릇도 보인다.
일본의 토템(totem)신앙은 아주 일반적인이라 무언가를 위해 빌어야만 하는 기복문화(祈福文化)가 어디든지 흔히 볼 수 있어 우리와는 또 다른 민간신앙을 접하는 것 같다.
1㎞ 쯤 걸어온 한 길가에 허수아비들이 재미있게 마중을 한다.
우리말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또 뵈요’ 라고 쓴 나무판을 세워두고 우스꽝스런 모습의 허수아비들이 한국의 탐방객을 반긴다.

한국에서 오는 탐방객을 위해 이토록 재미나게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규슈올레 개발 담당자의 발상이 놀랍다. 지루하지 않고 올레에서 힐링과 함께 무상, 무념의 경지를 맛보게 하는 올레의 참뜻을 길속에 묻어 두고 있어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카메라에 담는다.
다시 올레리본이 알려주는 길을 넘어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유자쿠공원(用作公園)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두 개의 연못, 신지이케(心字池)와 단지이케(丹字池)이름의 한문 표기를 우리식으로 읽으며 키득거리는 후배의 환한 얼굴만큼이나 연못 주변의 울창한 숲이 4월의 반짝이는 햇살에 더욱 푸르다.
아름드리 벚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500그루나 된다는 단풍나무가 붉게 물드는 가을이 그리워지는 유자쿠공원이다.
그 옛날 오카번(岡藩)의 우두머리 별장 터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올레 트레일이 주는 멋이 이런 것이 아닐까. 단순히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산과 들, 강을 따라 걸으며 그곳의 역사, 문화를 접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묘미 또한 올레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자산홍(紫山紅)이 열정적인 꽃망울을 터트리며 길 떠나는 길손을 환송하는 듯 쏟아지는 봄볕을 맞으며 길을 내어준다. 대나무 숲을 지나 산길을 따라 또 한 번 오름 짓을 하니 번듯한 신작로 길이 나온다. 조그마한 쉼터와 너른 주차장이 함께 있고 간간이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변에 위치한 이곳으로 아사지역(朝地驛)에서 주문한 도시락이 배달 온다. 도시락을 먹기 전에 길옆으로 난 소로로 내려가 가마쿠라시대에 지어졌다는 오랜 역사를 지닌 후코지(普光寺) 절에 들른다.

▲ 후코지절 맞은편에 위치한 일본 최대 마애불과 석굴의 모습.

일본 최대의 마애불상이 있는 후코지 절은 자그마한 법당과 종루, 일주문이 있는 조용하고 아담스런 사찰이지만 건너편에 마주한 거대한 마애불과 암벽에 만들어진 두 개의 석굴이 더욱 압도적이다. 초여름이면 주변에 수국이 아름답게 피는 절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을 따라 내려가 높이가 무려 11.3m나 되는 마애불 앞을 지나 석굴을 파서 만든 커다란 동굴 안에 각가지 불상조각을 한 석물들과 맨 위에 모셔놓은 석불에 예를 올리며 석굴 앞 너른 데크에서 맞은편 호쿠지 절의 소박한 정취에 빠져본다. 주지스님이 여기 데크에서 음악회를 갖는다는 말에 의아해 하면서 한쪽에 놓인 오르간을 보니 산사와 마애불, 석굴 등이 어우러지는 산중의 하모니가 자연을 노래 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 그려진다. 절을 둘러보고 올라오는 길목에 빨간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상이 여럿 눈길을 끈다.

▲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빼곡한 대나무 숲속으로 걸어가는 일행들.

마애불찻집(摩崖佛茶屋)이라는 쉼터에 앉아 맛있는 도시락으로 규슈올레 이틀째 한낮의 즐거움을 누린다. 쉼터를 벗어나 다시 숲길을 따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산자락으로 난 길을 걷는다. 들판을 가로질러 조그마한 일본 특유의 시골마을 앞을 지나간다. 어디를 가나 농촌마을은 조용하고 여유가 있어 좋다. 긴 원형 투명통 안에 무슨 작물인지 자라고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는 밭을 지나고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7㎞ 지점 직전에 코스 안내판이 있는 곳에 닿는다.
9만 년 전 아소산 대분화로 생긴 소가와(十川)강의 주상절리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원한 물줄기에 발을 담그며 그동안 고생한 발을 호사시킨다. 일행들이 너도나도 너른 바위 옆으로 흐르는 소가와 강물에 취해 한동안 떠날 줄을 모른다. 걷다보면 이런 행복감에 젖어들 때가 있는 게 올레 걷기의 멋이다. 주상절리 옆 ‘규슈전력 다케다 발전소’ 앞을 지나 또다시 대나무 우거진 숲길로 들어간다. 일본 섬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나무 숲은 어디를 가도 흔하게 볼 수 있고 대나무로 만든 죽세공품과 생활용품들이 곳곳에 늘려 있음은 일본을 여행하는 모든 분들이 느끼는 공통점일거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하늘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대나무 숲을 빠져나와 시야가 트이고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는 오래 된 성곽 아래에 닿는다.

▲ 무인역인 아사지역 앞에서 일행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반듯하게 깎아 쌓은 석축 성벽에는 성(城)의 오랜 흔적을 일러주는 돌이끼가 자욱하다. 해발 325m 암벽에 만들어진 난공불락의 요새인 오카성(岡城)이 있던 성터로 오른다. 일본 역사의 큰 전환점이던 에도시대에 근세성곽으로 정비 되었다는 오카성터 위에 그 옛날 번성했던 성내의 시설물 배치도가 그려져 있고 성(城)을 기념하는 전시실과 전망대가 있다.
잘 정돈된 성터에서 또 한 번의 일본인 근성을 보는 듯하다. 다 허물어지고 흔적만 남은 오랜 성곽과 터를 두고도 입장료를 받을 만큼 상업적이면서도 옛 조상들의 발자취를 보존하며 역사를 기리는 문화가 어쩌면 부럽기도 하다. 높은 성터에서 내려다보는 아래 성하(城下)마을과 훤히 뚫린 도로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오카성터를 내려오는 길목 매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갈증을 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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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26 2018-12-28 12:38:27
역시 항상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하는 여행이 최고이죠~ 저는 투어를 자주 가는데 티라운지에서 추천하는 투어는 항상 100퍼센트 만족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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