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호수의 물결 이방인 달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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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호수의 물결 이방인 달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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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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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복의 일본 규슈올레 탐방기 <3>
▲ 가구라메호수에 놓인 창포꽃 관람 데크와 관망대가 한가롭게 탐방객을 기다린다.

 

[경북도민일보] 오카성(岡城)터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모처럼 현지인들의 발걸음을 본다. 아이들을 데리고 성터를 구경 온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성터 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퍽이나 행복해 보인다.
너른 주차장 위로 오카성 성곽이 하늘에 닿아 있고 주변은 한가롭고 조용하기만 하다. 내려가는 길목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올레 표시 화살표가 우리를 기다리며 한 길가에 무심히 쳐다보는 들고양이가 이방인을 알아보는지 눈망울을 굴리고 있는 모양이 새삼스럽다.
마을 입구에 나 있는 터널을 지나 다케다시(竹田市)로 들어서면서 만난 한 청년이 대뜸 보기도 한국청년 임을 알 수 있어 반갑게 묻는다. 혼자서 자전거여행 중이라고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앞에는 잔뜩 짐을 실은 자전거를 힘겹게 타고 가는 젊은이에게서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 만큼 지구촌 어디에서도 한국인의 위상을 가늠 할 수 있고 진취적인 우리 청년들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어 반갑다.

▲ 기이하게 뻗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있는 16나한상의 모습.

다케다시(竹田市)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에도시대 오카번(岡藩)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곳으로 고풍스런 옛 상가 거리 등 역사 깊은 건물과 유적들이 많은 ‘작은 교토(京都)’라 불리는 성하(城下)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안에 위치한 메이지시대 이곳 출신 유명한 작곡가인 타키렌타로(瀧廉太郞)기념관을 지나 16나한상(羅漢像)이 있는 곳에서 모두들 신기하게 뻗어 내린 소나무 가지와 커다란 바위에 앉은 나한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끝내고 5시간 워킹의 종착점인 분고다케다역(豊後竹田驛)으로 간다. 앙증맞은 세 칸짜리 빨간색 열차가 서 있는 조용한 역사(驛舍)의 기와지붕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마트에 들러 저녁미팅(?)을 위한 먹거리 쇼핑을 마치고 숙소인 유모토야 료칸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온천의 뜨거움으로 달랜다.
저녁식사 후 느긋한 마음으로 호센지 온천마을로 산책을 나간다.
인적이 드문 마을길마다 온천 료칸들이 있고 골목으로 이어지는 마을전체가 조용하고 아늑한 풍경을 연출한다. 느림을 만끽하며 천천히 둘러 본 건물들마다 특색이 있고 깔끔하게 단장된 정원이 일본 특유의 멋을 부린다.
산책을 마친 일행들이 다카다에서 사 온 먹거리를 풀어놓고 즐거운 사케(さけ)타임을 즐기며 일본에서의 둘째 날을 보낸다.
4월 22일, 오늘의 일정은 좀 더 속도를 내야 될 것 같아 일찍 출발한다. 이번 탐방길 행사에 크게 도움이 된 게 날씨다. 사흘 내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기온도 적당하여 걷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다.
규슈올레 탐방 세 번째 코스는 ‘벳부(別府)코스’다.
오이타현 벳부시에 위치한 시다카호(志高湖)에서 출발하여 다시 시다카호수로 돌아오는 11㎞거리의 약 3~4시간을 걷는 코스로 난이도가 중상정도로 표기되어 있는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이지만 이번 트레일의 마지막 일정이라 약간의 아쉬움이 생기는 일정이다.

‘벳부(別府)’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온천지역으로 한국관광객에게는 친숙한, 도시전체가 온천관련 일로 생활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본 3대 온천의 하나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온천도시이기도 하지만 규슈올레 벳부코스는 온천도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차분하고 고요하며 아소구쥬국립공원(阿蘇くじゅう國立公園)에 포함된 풍부한 자연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코스다.

▲ 시다카호수에 핀 왕벚꽃나무의 꽃망울도 석별의 몸짓으로 다가온다.

시작점과 종착점인 사다카호는 표고 600m의 산상호수(山上湖水)로 약 1200년 전 주변 화산폭발로 생성된 호수로 주변 2㎞가 녹음에 둘러싸여 있어 더욱 평화롭고 여유로운 느낌이 드는 곳이다.
호수를 지나 이어지는 삼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얼마 전부터 이 코스를 재정비하기 위한 ‘공사 중’을 알리는 안내멘트로 숲길이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흙먼지가 풀풀거리는 길을 한동안 걷기도 한다.
이제껏 만나지 못한 한국인 탐방객들을 여기서 만났다. 부산 어느 산악회에서 왔다는 40명 가까운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앞서간다. 한동안 뒤섞여 가다 앞질러 가다보니 올레리본을 임시로 달아 놓은 지점을 놓쳐 엉뚱한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삼나무와 메타세콰이어가 하늘에 닿을 듯 길쭉하게 솟아 있는 숲길을 가다 보니 숲속에 여러 개의 묘비가 놓여 있는 가족묘지 같은 곳이  나온다. 컴컴한 숲속에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것 또한 일본 문화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숲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변 마을 앞을 지나 야생동물 방호책이 있는 게이트를 건너 밭을 따라 산비탈을 오른다. 조그마한 계류가 산위에서 흘러내리고 안내서에 폭포라고 적힌 곳에서 통나무 다리와 조그마한 폭포도 만난다. 자세하게도 설명하는 브로슈어 덕에 많은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 든다. 계류를 지나 오르막산길을 올라 시야가 트이며 전망이 좋은 지점에 ‘간세’가 쉬어가길 권한다. 멀리 ‘분고후지(豊後富士)’라 불리는 유휴다케(由布岳, 1584m)산과 쓰바키대교(椿木大橋)가 보이고 아랫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이어지는 삼나무 숲길을 걸으며 일본인 탐방객들을 만났다. 나이가 꽤들어 보이는 노인 남녀 7~8명이 재미나게 웃으며 씩씩하게 걸어간다. 이번 탐방 길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라 새삼스럽기도 했지만 나이든 노인들의 건강한 모습이 장수나라 일본다움에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한다.
벳부코스 6㎞지점을 지나는 숲길 옆에 수령 500년으로 알려진 한 쌍의 삼나무 거목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타고신사(愛宕神社)의 도리이(鳥居:일본신사 입구에 세워 놓은 문)가 거목 앞에 세워져 있고 숲속에는 허물어진 신사가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끝 모르게 뻗어있는 삼나무와 달리 가지가 수 갈래로 나뉘어 있는 거목 삼나무가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타고신사를 뒤로 하고 전망이 트이는 곳에 에다고공민관(枝鄕公民館)이 자리하고 넓은 공간에 쉴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어 간식을 풀어 놓고 마음껏 휴식을 취한다. 탁자 한 쪽에 함께 걷던 일본 노인네들이 가지런히 둘러 앉아 음식을 먹으며 재미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자유분방하게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과는 좋은 대조가 되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 시다카호수가 보이는 길목에서 마지막 여정의 아쉬움을 달래는 일행들 뒤로 쓰루미다케산이 보인다.

휴식을 끝내고 좁다란 대나무 숲으로 난 길을 간다. 올레 화살표가 종착점까지 3㎞ 남았다는 표지판을 달고 우리를 기다린다. 내리막길을 한참 걷다보니 넓은 개활지가 나온다. 모두들 두 팔 벌려 환호하며 긴 여정의 끝자락에 왔음을 기뻐한다. 축구장 몇 면이 될 너른 운동장 같은 개활지를 지나 가구라메호(神樂女湖)에 닿는다. 꽃창포로 유명한 호수로 6~7월에 80종류가 넘는 창포꽃 수십만 그루가 화려하게 호수를 장식하고 각종 이벤트가 열려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는 가구라메호수에는 아직 시기가 일러 창포꽃을 볼 수는 없지만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물위로 떠다니는 물새가 이방인을 달래는 듯하다.
창포꽃 관람을 위한 데크가 호수 깊숙한 곳까지 나 있고 지붕이 있는 관망대도 있다. 호수 너머 먼 곳에 보이는 벳부온천 발원지인 쓰루미다케(舞鶴岳, 1375m)산과 유후다케(由布岳, 1584m)산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옛날 쓰루미다케신사의 가무녀(歌舞女)가 살았다 해서 이름 지어진 이 호수는 신이 반할만한 풍광을 가지고 있는 듯 아름답고 아늑하다. 호수의 북서쪽 산책로를 따라 1㎞정도를 걸어 시다카 호숫가에 닿는다. 시다카호수 초입에서 일행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아쉬움이 하나 가득 담긴 손짓으로 여정의 끝마무리를 짓는다.
시다카 호숫가 왕벚꽃나무가 아직도 굵은 꽃망울을 매달고 있어 규슈올레  마지막을 장식하는 배경으로 제격이 되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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