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하늘 그 푸른 경계를 가르며 가슴으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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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 그 푸른 경계를 가르며 가슴으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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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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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아름다운 마을길-<4> 영덕 블루로드 B코스 / 푸른 대게의 길
▲ 풍력발전단지 산 아래에 위치한 영덕해맞이공원과 창포말등대.

[경북도민일보]  사람은 누구나 여행자 기질을 타고났는지 모른다. 일류 시작이 아프리카 어느 움막에서 출발해 긴 여정 끝에 이곳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행자 기질은 생존을 위한 치열함을 말하지 않는다. 또 화려하고 거대한 여행지 외형만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낯선 세계, 그 시간과 공간에서 대면하는 작고 평범한 조우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해 가는 것이 진정한 여행자의 길이다. 그런 이유에서 여행자의 길은 도(道)라 할 수 있다. 천지만물이 도(道)고, 그 내적가치를 파악하는 여행자의 안목 또한 도(道)다.
 19세기 인문학자인 아널드 홀테인은 <어느 인문학자의 걷기예찬>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자연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우리는 왜 자연 앞에 겸허해야 하는지, 우리를 감탄하게 하는 자연이란 무엇인지 알기위해서는 작은 물방울과 벌레 한 마리까지 심지어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 한 조각도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대자연은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다. 노자는 <老子>에서 큰 것과 작은 것을 비교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부질없고 허망한 것이라 했다. 작은 것이 없으면 큰 것을 크다 말할 수 없고, 큰 것이 없으면 작은 것도 작다 말할 수 없으니, 크고 작음은 가치 아니라 형태이므로 비교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만물은 서로 상생의 관계에 놓여있다. 하나가 있어 다음 숫자가 있는 것처럼 자연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음에 큰 의미를 두지말자. 작고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에서 새로운 가치와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여행의 진수를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다. 여행자가 둘레길을 걸을 때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수동적일수록 더 큰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어린아이가 난생처음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마주하듯, 자연이 주는 느낌을 오롯이 받아들이려는 개방적 태도가 있어야한다. 대자연이 이끄는 대로 겸손한 영혼과 감수성으로 날숨과 들숨에 맞춰 호흡하다보면 비로소 미시와 거시가 열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덕은 동해를 길게 마주한 만큼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항구가 여행자를 맞이하는 전형적인 한국 어촌문화가 녹아있는 곳이다. 육지와 해양문화가 공존하고 뿌리 깊은 역사문화물이 관광지 마다 산재해 있다. 특히, 여행자가 걷기를 좋아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영덕블루로드다. 블루로드는 2년 연속 소비자가 선정한 최고 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만큼 4개 코스 모두가 풍광이 아름다운 길이다. A코스는 빛과 바람의 길, B코스는 푸른 대게의 길, C코스는 묵은 사색의 길, D코스는 쪽빛 파도의 길이라 이름 붙여져 있어 코스마다 지리, 문화, 정서, 풍토적 특징을 살려 조성되어 있다. 블루로드 전체가 여행자에게 감흥을 일으키는 곳이지만, 그 중에서도 B코스인 푸른 대게의 길은 가장 영덕다운 웅숭깊은 어촌문화를 오롯이 채득할 수 있는 풍취의 길이다. 
 

▲ 창포말등대는 영덕의 상징이자 푸른 대게의 길 출발점이다.

 해안 곳곳의 비경은 바다에 맞선 치열한 상처다
 푸른 대게의 길은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오보해수욕장, 경정해수욕장, 대게원조마을, 블루로드 다리를 거쳐 죽도산까지 약 14km를 해안선 절경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다.
 푸른 대게의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창포말등대다. 거대한 대게가 집게발로 등대를 감싸고 금방이라도 붉은 태양을 집으려는 자세로 집게를 쩍 벌린 형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통해 등대전망대에 올라서자 확 트인 공간에 짙푸른 바다가 성큼 다가왔다. 파도 한 점, 구름 한 점 없는 바다와 하늘은 그 자체가 김환기의 추상화‘고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해맞이공원은 등대아래 골짜기 아담한 비탈을 따라 2만여 야생 꽃과 900여 향토수종 꽃나무로 조성되어있다. 곳곳을 아기자기하게 가꿔 놓은 공원은 두 사람이 함께 걸어도 괜찮을 만큼 오솔길이 나있어 산책하기 좋다. 해안을 접한 아래로 내려가자 큼직한 바위가 여기저기 군상을 이루고 있다. 그 중 바위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바다 밑에서 손을 뻗어 바위를 움켜잡은 특이한 모양이다. 약속바위다. 안내판에는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되어있다.    
 여기서부터 대탄항까지 이어진 둘레길은 영덕 바다를 가슴으로 맞이하며 걷는 코스다. 바다는 그 자체가 거대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세상의 바다는 하나로 연결돼 있어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여행자를 맞이하는 태도가 금방 달라진다. 허연 물거품을 날리며 거칠게 달려드는 파도, 바다를 향해 온몸으로 막아내는 거대 바위. 둘은 부딪칠 때 마다 아우성을 쳐도 누구도 패배를 선언한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바위들은 바다를 향해 금방이라도 뛰어들 태세로 서있다.
 대탄항을 지나고 조그마한 어촌마을에 들어서자 마을 앞으로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있다. 오보해수욕장이다. 바다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인지 아이들은 물가에서 두꺼비집을 짓고 어른들은 백사장을 거닐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 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백사장도 넓어 가족과 함께 특별한 추억 만들기에 좋은 장소다. 
 
 영덕의 어촌은 오래된 바다이야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푸른 대게의 길에서는 가는 곳마다 등대와 마주하게 된다. 고기잡이에서 돌아오는 어부에게도, 육지 먼 곳에서 온 여행자에게도 아련한 감정을 동반하게 하는 정겨운 존재다. 영덕의 매력이 바로 이것이다. 대처로 유학 간 자식들은 고향으로 돌아와도 직업으로 할 것이 변변치 않다. 평생 바다를 삶터로 여기며 배만 탄 아버지는 자식 공부시켜 대처에서 출세하길 바라는 마음이 전부다. 젊은이가 없는 어촌은 거리에서 사람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낮에도 사람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등대다. 방파제 끝에 빨간색 등대는 언제부터 저곳에 서있었을까. 대처로 떠난 소꿉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영덕의 등대는 마을마다 오래된 이야기 하나쯤은 품고 있다.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붉은 바위들 자태가 해금강을 보는듯하다. 밀려오는 파도가 금방이라도 바위를 부셔버릴 기세다. 산세 좋게 쭉쭉 뻗은 바위산들이 파도를 갈기갈기 찢어 골짜기 아래로 가둬버린다. 파도는 흰 천을 바다에 깔아 놓은 듯 허물어져 버렸다. 이곳 바위들은 바다를 농락하는 듯하다. 자갈길을 따라 경정 3리로 들어서자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에서는 동신바위라 부르는 곳이다. 동신바위 봉우리는 나무 가지들이 문어발처럼 감싸고 있어 그 형상이 삿갓을 쓰고 있는 것 같다. 500년 된 향나무 한그루가 동신바위를 덮고 있다. 이 마을에서 오매향이라 부르는 나무와 동신바위는 신성한 장소다. 경정 마을을 오매마을이라 부르는 이유도  오매향나무 때문이다. 500년 전 안동권씨가 들어와 동신바위에 향나무, 대나무, 소나무를 심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오매향나무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동신바위 아래에는 마을 수호신을 모신 동신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게원조마을’‘치유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큰 어촌마을이 바다를 마주하고 길게 펼쳐져 있다. 영덕군 축산면 경정 2리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맨손잡이체험, 따개비체험, 삼림욕체험, 풍등체험, 통발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 해서 치유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마을 우측에는 대게원조마을임을 표시한 상징비석이 위풍당당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로 옆 정자에서는 잠시 쉬어가도 좋을 만큼 어촌풍경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멀리 뾰족하게 솟은 죽도산(竹島山)이 맑은 바다 경치와 어우러져 신비롭게 보인다. 이 마을을 대게원조마을이라 부르는 이유는 죽도산 근처에서 잡힌 게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대게라 부른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타 지역에서 잡힌 대게는 들이지 않는다. 대게원조마을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다.
 여기서부터 축산항까지는 4km를 더 가야한다. ‘초병의 길’이라  이름이 붙여진 이 길은 곳곳에 해안 초소가 있고 밤이면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는 지역이라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해안을 접하고 있지만, 숲이 우거져 조금 거친 길이다. 숲길에서 빠져나오자 확 트인 백사장 멀리 블루로드 다리가 웅장한 자태로 여행자를 기다린다.
 

▲ 블루로드다리 뒤로 보이는 죽도산과 전망대.

 길 끝자락에서 만난 죽도산, 흘린 땀만큼 감동으로 다가 온다
 블루로드다리는 현수교로 된 100여m 길이에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면 딱 맞을 넓이로 되어있다. 약간 출렁거림이 있는 것이 이 다리의 매력이다. 가운데로 갈수록 육지에서 뻗어 나오는 축산천이 제대로 드러나고 다리 아래로 하천과 바닷물이 합쳐진다. 연인들이 곳곳에서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한창이다. 블루로드다리를 건너자 지척에 죽도산 입구가 나온다.
 죽도산은 축산항 바로 뒤쪽에 있는 약 87m로 된 작은 산을 말한다. 대나무가 많이 자랐다고 해서 죽도산으로 불리고 있지만, 원래는 산이 아니라 섬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바다를 매립하면서 육지로 이어지게 되면서 ‘죽도’ 라는 명칭에 ‘산’ 이 붙게 된 것이라고 한다. 죽도산은 산 전체가 희귀식물 군락지다. 참나리, 산국, 섬쑥부쟁이, 해국을 비롯해 갖가지 해안가 자생식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거대한 식물원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식물들을 감상하다보면 어느덧 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다. 원래 이곳에는 등대가 있었는데, 2011년 등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7층 높이로 죽도산전망대를 세웠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축산항 일대는 물론 풍력발전단지와 영덕 해안가 절경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아름다움은 흘린 땀만큼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 같다. 
 축산항에는 주차장에 빼곡히 자동차가 주차된 것처럼 크고 작은 고깃배들이 겹겹이 정박해 있다. 대부분이 대게 잡이 어선들이다. 축산항은 영덕이 자랑하는 대게 잡이 항구 중 하나다. 멀리 푸른 대게의 길이 바다와 육지를 가르며 성큼 다가온다. 거쳐 온 마을, 바위, 나무, 등대, 파도, 길 곳곳에 남긴 채취가 이제야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다.

 

 

김용진 작가

경북문인협회 회원, 디자인학 박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지역문화콘텐츠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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