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들의 전부였던 가족을 이어준 ‘찌고이네르바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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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들의 전부였던 가족을 이어준 ‘찌고이네르바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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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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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의 클래식 이야기
▲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경북도민일보] 사라사테의  Zigeunerweisen (집시의 노래)

△남편의 바람기 잡는 음악 ‘찌고이네르바이젠’
오늘은 ‘가족’을 테마로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이라는 곡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찌고이네르바이젠’은 번역하면 ‘집시의 노래’이다.
‘집시’는 유럽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방랑족이다. 서양에서는 ‘집시 같은 사람’을 ‘사회의 관습이나 규율 등을 무시하고 방랑적이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방랑벽이 있는 집시가 가족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집시는 원래 피부색이 짙은 인도 출신 사람들로서 고유 언어인 ‘집시어’를 사용하며, 11세기 페르시아, 14세기 남유럽, 15세기 서유럽을 거쳐 현재 약 200만명 정도가 수세기에 걸쳐 유럽 중남부를 떠돌며 살고 있는데, 백인들의 지역에서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늘 공개적 박해와 탄압으로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쫓겨 다니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 믿을 것은 오직 ‘가족’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집시들의 언어에는 ‘핵가족’은 없고 ‘대가족’의 개념만 있다. 집시의 한 가족은 대가족인 ‘비트사(vitsa)’로 구성되는데, 많을 때는 200명 정도가 된다. 집시의 가족 제도 가운데 크리스(kris)는 가족 내에서의 충성·결속력을 강제하는 관습법적 사법시스템으로서 크리스 재판의 가장 가혹한 극형은 가족으로부터 추방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시’의 DNA에는 ‘가족집단에 대한 충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시들은 이동하며 생계를 위해 전통적으로 남자들은 가축중개인, 땜장이(대장장이·수리공), 음악연주를 하고, 여자 집시들은 점쟁이, 길거리 걸인 예능인과 약장수로 생활을 해오고 있다.
여자 집시 점쟁이들이 주로 했던 것이 ‘타로카드 점’이었는데, 타로점을 쳐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타로점은 짝사랑, 연애운, 애정운, 관계운 등을 주로 본다. 그래서 집시 타로점의 근본은 가족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점치는 것이라고 하겠다.
플라멩코 춤 등 집시들의 음악과 춤 역시 대가족 내에서 가족의 사랑과 끈끈한 결속을 강화시키고 가족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하겠다. 집시 음악가들이 방랑하며 길거리 걸인 음악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했던 것은 집시 음악가들이 ‘가족’을 모티브로 행인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이름 모를 집시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그 옆을 지나가던 위대한 작곡가 사라사테는 그 감동을 다시 ‘찌고이네르바이젠’으로 작곡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믿고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는 집시들의 ‘가족 에너지’가 ‘찌고이네르바이젠’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은 연인이 함께 감상하면 반드시 행복한 결혼으로 맺어주게 하는 마술을 부리고, 바람난 남편의 바람기를 잡고 오로지 아내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주문이 담겨 있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바이올린 곡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연주자들은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이 곡을 연주하며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최고의 레퍼토리였었던 시절도 있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필자도 한때는 사라사테의 이 작품을 잘 연주해보는 것이 목표가 되어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과 같은 작품이었다.

독일 유학시절 이래저래 공연할 기회가 많았는데, 연주를 의뢰받으면 단골 메뉴처럼 ‘찌고이너바이젠’을 연주를 하고 큰 박수갈채를 항상 받았다. 연주자들에게는 공연을 위해 즐겁게 연습할 수 있는 작품이고 고난이도 테크닉의 연주는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는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찌고이네르바이젠’의 작곡가는 19세기 최고의 명 바이올린리스트 중 한사람인 ‘파블로 사라사테’이다. 당시 음악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연주자인 ‘니콜로 파가니니’ 사후 그의 명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최고의 천재 바이올린리스트라 평가 받았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파가니니처럼 자신만을 위한 작품을 썼다. 그래서 기교가 매우 어렵고 난해하다. 일반 연주자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었던 그만의 작품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감동을 준다.
사라사테가 남긴 많은 바이올린 작품들 중에서도 1878년에 작곡된 ‘찌고이네르바이젠’이 가장 유명하다. ‘집시의 노래’라는 뜻의 이 작품은 집시풍의 느낌을 전해주는 이국적인 선율이 매력이다.
템포(속도)의 변화에 따라 ‘찌고이네르바이젠’의 분위기는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보통 빠르기의 모데라토(Moderato)가 시작되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정렬 적이고 인상적인 멜로디가 도입부에 연주된다.
마치 스키의 아찔한 활강을 보는듯한 바이올린 분산화음의 선율은 감상자들에게 음악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어 빠르기가 매우 느린 렌토(Lento, 느리게)로 바뀌면서 본격적인 ‘집시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부분에선 특히 집시들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장식음이 애절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운 포코 퓨 렌토(Un poco piu lento, 좀 더 느리게)에서 속도가 조금 더 느려지면서 약음기(소리를 작게 하는 장치)를 사용한 바이올린은 애절하고 통절한 슬픈 선율에 집시의 한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Allegro molto vivace, 빠르고 매우 생기 있게)에서 템포(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독주 바이올린의 난 기교는 절정에 달한다.
곡의 말미부분에는 왼손으로 바이올린 줄을 퉁기며 마치 바이올린이 아니라 기타를 연주하는 화려한 난 기교를 선보이게 된다. 보통 이 부분에서 청중들은 사라사테의 매력에 완전히 몰입하고 압도된다. ‘찌고이너바이젠은’ 기교적으로 대단히 어렵고 화려하다. 바이올린 연주법상의 기교가 난곡중 난곡이라 당시에는 ‘사라사테’ 밖에 연주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보통 속도에서 느리고, 더 느리고, 마지막으로 매우 생기 있게 빠르게 변하는 곡의 속도 변화와 난해한 기교와 변화무쌍한 바이올린 선율은 마치 우리의 사랑싸움 같기도 하고 청혼하는 연인의 심장 소리 같기도 하고, 수십 년의 결혼생활과 가정의 풍파를 견뎌낸 아내의 애절한 호소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감정은 한순간에 왔다 바람처럼 사라질지 몰라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가족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은 1000년 동안 집시들이 유럽 각처로 떠돌며 온갖 천대와 탄압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는 고난의 역사와도 같다고 하겠다. 그러한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찌고이네르바이젠’에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바람난 남자의 바람기를 없애주고, 집나간 아내를 찾아주는 힘이 ‘찌고이네르바이젠’에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집시의 노래’를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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