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날의 행복, 넉넉한 날의 불행
  • 모용복기자
가난한 날의 행복, 넉넉한 날의 불행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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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중·고교 때 국어시간에 배운 수필에 나오는 말이다. 이 문구가 30여 년이 넘도록 머리 속에서 생존한 까닭은 절묘한 비유와 대조로 이루어진 수사법 덕분이기도 하지만 가난을 단지 힘들고 슬픈 것으로만 여기기보다 눈물겨운 가난 속에서도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는 역설(逆說)적인 내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작가는 가난한 세 부부의 일화를 통해 비록 살림살이는 곤궁하지만 부부 간의 사랑을 잊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즉 행복이 반드시 물질적 부유함과 일치하지는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 때는 그랬다. 이 작품이 탄생한 70~80년대는 7~8할이 가난한 축에 드는 서민들이었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돼 발전 도상(途上)에 있었지만 전쟁과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가난을 대물림해온 서민들은 여전히 궁핍한 생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난을 숙명(宿命)으로 받아들이고 체념과 실낱같은 희망 속에서 오히려 행복감을 맛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 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세계 12위의 경제규모(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를 자랑하는 풍요로운 국가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도 거의 3만 달러에 육박해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년대 중반 1인당 GDP가 700~800달러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발전상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다.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이 갖게 된 대한민국, 풍요로운 국민이 된 것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 국민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력에 비해 행복감을 훨씬 못 느끼고 있다. 최근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5.875점으로 157개국 중 57위, OECD 34개국 중에서는 최하위인 32위를 기록했다. 우리 경제규모와 행복 체감도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도 문제지만 행복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행복 격차를 나타내는 행복불평등도는 157개국 중 96위였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다. ‘삶의 만족도’를 보면, 개별 응답자들의 만족도가 국민 전체 평균(척도 10점 만점)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정도인 표준편차는 한국(2.16점), 중국(1.99점), 일본(1.88점) 순으로 나타났다. 행복감의 격차가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보다도 낮았다.

KDI가 만 19세 이상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행복지표 개발연구’에서는 22.6%가 ‘행복취약층’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성인 20.2%가 ‘현재 불행하며 과거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고 미래에도 희망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2.4%는 ‘현재 평균보다 불행하고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
흥미로운 점은 소득이 낮을수록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많다는 점이다. 지난 2일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 16.5%가 행복빈곤층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가운데 자신이 저소득층이라고 여기는 사람의 절반 정도(47.9%)가 행복감이 ‘빈곤’한 대상에 속했다. 반대로 소득이 높을수록 행복빈곤층에 속하는 비율이 낮았다. 중하층은 22.7%, 중간층은 8.1%, 중상층은 3.0%가 행복감이 낮은 부류에 포함됐는데 저소득층과 중상층의 행복빈곤율 격차는 무려 45%에 달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행복=경제’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소득의 많고 적음,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요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연 그럴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위의 유엔 세계행복보고서가 말해주고 있다. 만약 ‘행복의 척도가 곧 경제’라면 우리는 경제규모 세계 12위에 버금가는 행복지수가 나와야 이치에 맞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지 않는가.
행복지수 57위. 결코 자랑할 수 없는 순위다. 물론 각기 사는 환경이 천차만별인 국민 행복을 계량화해서 순위로 매기는 자체가 어딘가 모순된 면이 없진 않다. 하지만 최고 국제기구인 유엔이 할 일 없어 매년 이런 보고서를 낼 리는 만무한 일이고, 또 유엔 보고서를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보면 남는 것은 왜 우리의 행복지수가 경제수준에 비해 이다지도 낮은지 궁금증이다. 이것 역시 보고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더욱 충격적인 지표는 우리나라의 행복불평도가 행복체감도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96위라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꼴찌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도 하위권에 속한다. 세계 12위의 경제국가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 여건보다 불평등, 즉 상대적인 박탈감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사연 보고서에서 경제와 행복을 연계한 ‘행복빈곤층’이 16.5%로 나타난 것도 결국 ‘절대적인 빈곤’보다 남보다 덜 가진 것으로 인해 느끼는 ‘상대적인 불행’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봐야 옳다.
우리는 유독 나와 타인을 비교하려는 습성(習性)이 강한 민족이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의 떡이 커 보이면 불행을 느낀다. 아무리 경제규모가 커지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더라도 남을 향한 비교의 시선(視線)을 거두지 않는 한 행복지수는 높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 들어 이런저런 불평을 자주 늘어놓는 내 아내도 나와 다른 집 남편을 비교하지 않으면 행복도가 조금은 상승하지 않을까?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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