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무너지면 솟아날 구멍은 없다
  • 모용복기자
원칙이 무너지면 솟아날 구멍은 없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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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는 나라’외치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文정부
도덕성 결여 2기 내각 인선에
국민 실망감·분노는 더욱 커
 
남의 눈 속 티끌만 보지말고
내눈 속 들보 먼저 봐야할 때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외교부가 최근 공개한 한 외교문서가 눈길을 끈다. 1988년 만들어진 이 외교문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한 달 전 5공화국 최대 치적으로 “한국의 민주 발전”이라고 말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당시 방한한 스티븐 솔라즈 미(美) 하원의원과의 면담 자리에서다.
제5공화국은 물가안정·부동산 투기 억제와 같은 경제분야 성과와 88올림픽 유치 등 업적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 태생부터 민주 정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군사 쿠데타로 탄생한 전두환 정권은 부정부패와 민주화운동탄압, 고문 등의 인권유린행위로 오늘날까지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전 전(前) 대통령은 정권의 최대 업적으로 ‘민주 발전’을 꼽았다. 비록 6월항쟁이라는 타의(他意)에 의한 정권이양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결단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크게 발전시켰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며 혀를 찰지 모른다. 또한 전 씨가 당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않았더라도 민주화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듯 독재정권이라는 오명을 듣는 5공화국도 남이야 어찌됐건 정작 자신들은 민주주의를 앞당긴 주역(主役)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권력을 쥔 자들은 대개 귀가 막히게 되고 눈이 멀어지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출범 만 2년을 눈앞에 둔 문재인 정부가 장관인선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2기 개각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후보자 2명이 부동산 투기 의혹과 해외 부실학회 참석 논란으로 낙마했다. 이 정부 들어 벌써 7번째 불상사다. 역대정부 고위직 낙마를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 2명, 노무현 정부 3명, 이명박 정부 8명, 그리고 인사난맥상이 가장 심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10명이 검증과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년도 채 안 돼 벌써 7명이 교통사고를 냈으니 수치상으로 볼 때 ‘적폐 정부’보다 더한 ‘사고 정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이 정부가 다른 건 몰라도 도덕성만큼은 국민 눈높이에 맞고 상식이 통하는 정부이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정상국가에 목말라했는지는 2년 여 전 촛불집회에서 잘 드러났다. 국민들은 엄동설한의 한파에도 아랑곳없이 상식이 통용되는 국가 건설을 위해 ‘이게 나라냐’며 목놓아 부르짖었다. 그리고 마침내 ‘적폐 정권’을 탄핵하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와 희망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등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이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해 많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경제지표 몰락, 용두사미(龍頭蛇尾) 된 북핵 외교 등 대내외적인 시련에 부딪히면서 민심과의 괴리도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 뿐인가. 최근엔 2기 내각 장관 후보자들의 국민 눈높이에 한참 벗어난 자질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규제하겠다던 다주택자를 주택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국토부 장관으로 내정하는가 하면 천안함 폭침, 박왕자씨 피격사건, 사드배치 등 북한문제와 관련해 국민정서와 정면 배치된 견해를 표방해온 후보를 통일부 수장으로 낙점한 사실을 어떻게 우리는 받아들여야 하는가. 더군다나 이미 낙마한 인사들을 비롯해 임명강행 예정인 대부분 후보자들이 크고 작은 흠결로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소위 7대 인사검증 기준(병역기피·세금탈루·불법 재산증식·위장전입·연구 부정행위·음주운전·성 관련 범죄)에서 걸러내지 못했다고 항변한다. 과연 그럴까? 위장전입 9단(아홉차례 위장전입)의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네 차례에 위장전입 전력이 있는 문성혁 해수부 장관 후보자는 분명 인사검증 기준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그런데도 버젓이 장관 후보로 발탁된 것만 봐도 청와대의 해명이 새빨간 거짓말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중도하차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는 다소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촛불혁명’ 이후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를 이 정부가 따라가지 못한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그는 30년 만에 겨우 집 한 채를 마련했지만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성 매입 의혹, 석연치 않은 대출과정 등은 분명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배치된 일이었다. 정부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고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등 강력한 부동산 대책으로 국민들의 주택구입을 억제하면서도 정작 고위 공무원들은 정책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평등 해소를 정책의 핵심기조로 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여당 최고위원인 설훈 의원이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장관 후보자들의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문제와 관련해 과거엔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가 통상적이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생각이 여권에 만연된 현상이라면 정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 이번 장관인선에서도 이러한 도덕적 둔감증이 영향을 미쳐 검증과정에서 소홀히 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청와대가 자신이 만든 인사검증 기준을 스스로 어긴 꼴이다. 촛불혁명이 만들어준 정권의 바람직한 모습이랄 수 없다.
현 정권이 권력에 시야(視野)가 흐려진 까닭에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국가를 만들겠다는 애초의 목적이 흐지부지 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독재정권이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큰소리 치듯 말이다. ‘내 눈의 들보를 남의 눈에 있는 티끌’보다 잘 보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이 정부 또한 ‘적폐 정권’으로 낙인 찍혀 심판대에 오를 날이 머잖아 도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살 길은 오직 원칙을 지키는 일 뿐이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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