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記者)와 독재자
  • 모용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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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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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방송 대담 놓고 진행자의 질문·태도 논란
비록 대통령이라할지라도 기자는 전 국민을 대신해 모든 것 질문할 권리 있어
정치 편향성 문제 삼거나 불쾌감을 느낄 필요 없어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국민과 기자가 권력 앞에 다소곳한 나라가 아니다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인터뷰란 싸움이다. 남녀의 육체적 관계와 같은 것이다. 상대를 발가벗기고 자신도 발가벗은 채 서로가 숨기는 것 없이 인격 전부를 걸고 맞서는 싸움이어야 한다.’
이탈리아 출신 기자(記者)인 오리아나 팔라치가 인터뷰를 하는 기자의 마음가짐을 강조한 말이다. 종군기자로 출발해 지구촌 곳곳을 넘나들며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모두 무장 해제시켜 ‘전설의 여기자’라는 명성을 얻은 그녀는 기존의 의례적이며 수사적인 인터뷰가 아닌 상대의 심장에 직격탄을 날려 결국 자백하게 만드는 인터뷰를 한 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팔라치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이툴라 호메이니, 폴란드의 영웅 레흐 바웬사,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아세르 아라파트, 중공의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 헨리 키신저, 인디라 간디, 무하마드 알리 등 전 세계의 권력자, 유명인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망라돼 있다.
그녀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향해 카우보이라고 하고 이슬람 원리주의자이자 이란의 지도자였던 호메이니 앞에서 차도르를 벗어 찢어버렸으며, 중국의 덩샤오핑이 팔라치의 무례한 인터뷰 태도에 뺨을 때리겠다고 하자 기사로 쓰겠다고 대꾸한 일 등 권력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벌어진 무수한 에피소드는 기자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접하게 되는 통과의례다.
팔라치가 인터뷰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원이었던 부모의 영향을 받은 불굴의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공격적인 질문과 자신이 주도해 자신만의 색깔로 인터뷰를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팔라치의 끈질기고 노련한 질문에 ‘베트남 전쟁은 어리석은 전쟁이었다’고 자백해버린 키신저가 그녀를 두고 “어떤 기자보다도 까다롭고 대담하고 날카롭다”면서 “그녀와 인터뷰한 것은 내 평생의 실수”라고 후회한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앞두고 국내 언론과의 첫 방송 대담(對談)을 가진 가운데 진행을 맡은 기자의 질문방식과 태도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독재자 발언이다. 대담 진행자인 송현정 기자는 문 대통령을 향해 “(야당 입장에서) 야당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정국을 끌어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얘기하는 것 아니냐”며 “독재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느냐”고 다소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일부 국민들은 ‘독재자’라는 표현은 자유한국당에서 문 대통령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사회자가 중립의무를 잃었다고 비난 메스를 가했다.
다음으로 대통령의 답변 도중 몇 차례 말을 자르고 얼굴을 찌푸리는 등 무례를 범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특히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불쾌감을 느낀 것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향해 일개 기자가 어떻게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느냐는데 있다. 사실 송 기자의 대담 진행방식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 달랐다. 사회자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말하면 끝까지 경청하고, 기자는 받아 적는 것이 우리가 보아온 익숙한 풍경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탄핵의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기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는 자리에서조차 이러한 모습은 여전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촛불을 들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의 대통령이 이러한 구습(舊習)을 되풀이 한다면 그 촛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기자는 모든 것을 질문할 권리가 있고 또 항간에 떠도는 얘기를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독재자’는 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수층에서 문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줄기차게 던지고 있는 용어다. 이에 대해 기자는 대통령의 심정을 물었고 대통령은 대답했다. “맞지 않는 얘기”라고. 그것으로 그만이다. 정치적인 편향성을 문제 삼을 일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국민에게 내보이는 기회가 됐으며, 또한 ‘독재자’ 논란이 이 질문 하나로 해소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의 대담 진행자는 국민을 대변해 질문하는 사람이다. 비록 상대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일방적으로 나열해 국민이 듣고 싶은 답변을 하지 않는 경우엔 진행자로서 말을 자르는 게 맞다. 두 사람의 말이 몇 차례 섞여 국민을 불편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송 기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도 기자의 질문에 좀 더 신축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의 대담을 앞두고 송 기자가 가졌을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지고 듣고 싶은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질문과 예상 답변, 그리고 보충질문지를 준비했을 것이 틀림없다. 또한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초년생 시절에 탐독했던 책을 서재에서 다시 꺼내 들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전 세계 권력자들을 쥐락펴락한 ‘인터뷰의 전설’ 오리아나 팔라치의 유명한 일화들도 포함돼 있었을 지 모른다. 필자는 송 기자의 다소 거칠고 세련미 부족한 공격적인 진행에서 팔라치의 냄새가 묻어있음을 느꼈다.
송 기자의 과욕(過慾)에 대해 불쾌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어쩌면 이번 대담이 대한민국이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증명한 셈이며, 나아가 앞으로 어떤 정권이 이 땅에 들어서더라도 언론이 취해야할 전범(典範)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국민과 기자가 권력 앞에 웃는 낯빛을 하며 다소곳한 태도를 취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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