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과 지록위마(指鹿爲馬)
  • 모용복기자
소득주도성장과 지록위마(指鹿爲馬)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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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가계소득 증가율 0.8%
하위 10% 1분위 월 평균소득은
되레 줄어든 최악 경제지표에도
‘소주성 성공’외치는 文대통령
‘지록위마’로 화답하는 참모들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간신(奸臣)인 환관 조고는 진나라를 통일한 진시황제가 죽자 유조(遺詔)를 위조해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2대 황제로 옹립한 뒤 권력을 전횡(專橫)했다. 황제를 환락에 빠뜨려 정사(政事)에서 멀어지게 한 후 승상 이사를 포함한 원로 중신들을 교묘한 계략으로 처단한 다음 스스로 승상이 되어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조고가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황제에게 바치며 좋은 말(馬)이라고 하자 호해는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합니까?”(지록위마, 指鹿爲馬)라며 중신들에게도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조고의 위세가 두려운 나머지 대다수 중신들은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 중 의기(義氣)를 가진 몇몇이 사슴이라고 말했다가 훗날 조고에게 죽임을 당했음은 물론이다. 조고는 지록위마를 통해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는 한편 반대세력을 처단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로써 지록위마는 후세에 간신에 의해 진나라가 멸망하게 된 것을 나타내는 상징어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추진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소득은 정체되고 가계소비여력마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증대를 통해 가계소비를 늘리고 내수가 활성화되면 기업실적과 기업투자 증가로 이어져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한낮 백일몽(白日夢)이었다는 사실이 지표로 드러난 셈이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가계소득은 462만원으로 1년 전보다 0.8%(3만6000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실질소득 증가가 0%대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17년 3분기 이후 6분기 만이다. 이는 가계소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근로소득이 줄었기 때문으로, 정부가 가계소득 증가를 위해 단행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고용부진과 그로 인한 근로소득 감소로 이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저소득층 살림이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욱 쪼그라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이 가난한 이들의 살림살이를 더욱 팍팍하게 만든 소득저하정책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저께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 1분기 하위 10%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0만3000원으로 1년 전보다 4.5%(3만8000원) 감소했으며, 현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17년 1분기와 비교하면 2년 만에 무려 16.2%(15만5000원)이나 줄어들었다.
문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은 과거 정부와 비교해 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 1분기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7만5000원으로 2년 전보다 14.8%(11만3000원) 늘었으며, 이명박 정부 2년차에는 0.3%(1816원) 감소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현 정부 2년 차에선 완전히 정반대로 뒤집히고 말았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경제정책이 반대로 저소득층 소득저하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고도 소득주도성장정책이 실패라고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 참석해 “정부의 경제정책과 성과가 당장은 체감되지 않을 수 있지만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SNS에서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성장 잠재력의 추락으로 우리 경제는 장기 불황의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대통령은 대체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으로 ‘우리 경제가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문 대통령을 가리켜 “달나라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소주성 성공’을 외치자 정부부처 장관들도 일제히 ‘지록위마’로 화답하고 나섰다. 지난 23일 통계청의 저소득층 소득하락 발표에 따른 긴급 관계장관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분위 배율이 1분기 기준으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하락해 소득격차가 완화됐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근로소득 증가에 힘입어 증간계층 소득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정책의 성공이라기보다 고소득층 소득감소로 인한 착시효과로서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근시안적 처사다. 기초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을 제외한 시장소득만 놓고 보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소득격차는 10배 가까이나 된다. 통계작성 이후 사상 최대치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 경제성장의 선순환구조를 견인하겠다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세금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일 수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실패한 정책이다. 소득양극화가 해소되려면 우선 저소득층의 소득이 높아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고용창출 등을 통한 근로소득 증가가 선행돼야 함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즉 혁신성장을 통한 경제활성화 없이는 저소득층 소득증가도, 소득양극화 해소도 달성될 수 없다는 말이다. 민간 투자와 일자리 창출 동력을 끌어올려야 정부 경제정책도 탄력을 받게 된다. 시장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정부가 아무리 재정을 퍼부어도 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돈을 쏟아부을 궁리만 하고 있다. 그런다고 소득주도성장정책이 성공으로 귀결될 수는 없다. 사슴이 말이 될 수 없듯 말이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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