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모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 모용복기자
그 많던 모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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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모기 개체수 급감
연일 폭염으로 短命·여름잠
고사망률·저출산율 덕택에
강제 헌혈 공포에서 벗어나
한국 출산율 작년比 7.6%↓
올해 0.9명 이하 추락 전망
취업난으로 결혼 포기 원인
예산 투입에도 백약이 무효
날씨 영향받는 모기와 달리
우리의 출산율 회복은 遙遠

 

 

“모기 한 마리 왱 하고 귓가에 들려오면/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단다/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베 이불을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어느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 머리처럼 돼버리고/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그는 이미 가고 없어/싸워봐야 소용없고 잠만 공연히 못 자기에/여름밤이 지루하기 일 년과 맞먹는다네/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네가/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 배우는 일이요/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을 한단 말가”

다산 정약용은 시(詩) 증문(憎蚊, 얄미운 모기)에서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빨아먹는 탐관오리를 모기에 빗대어 세태를 풍자했다. 예나 지금이나 모기는 탐관오리 만큼이나 여름밤 사람을 못 살게 구는 성가신 존재였다. 하기야 공룡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모기가 인간이라고 무서워 할 리 있나. 오히려 공룡에 비하면 발바닥의 때만큼 우스운 존재로 생각될 수도 있을 터.

지난 주 경북 영양에 있는 국립자연휴양림에서 야영을 했다. 샤워장과 화장실, 주차장이 비교적 잘돼 있어 2년 전에 이어 이번에 또 갔다. 무엇보다 산 속 자연휴양림에 제법 규모가 큰 도서관이 있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뭐 그렇다고 모처럼 물 좋고 공기 좋은 산속까지 와서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을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래도 한낮에 더위를 피하기엔 이만한 곳도 없을 성 싶다. 집에서 책보는 날이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아내가 자연휴양림 도서관에서 책을 집어들었을 때 얼핏 웃음이 났지만 나도 한 30분을 별 볼일 없이 빈둥댔으니 별로 할 말은 없다.

여름 밤 산속에서 야영을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모기와의 전쟁이다. 이 일전(一戰)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저녁밥을 제대로 먹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잠자리가 편하다. 그래서 지난날 숱한 패배의 쓴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기향 세 통, 모기약 1통, 그리고 혹시 모를 전쟁 중 부상에 대비해 치료약까지 든든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늦도록 텐트 밖에 나앉아 있어도 ‘앵앵’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뿐더러 피가 몸 밖으로 새나가는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거짓말처럼 모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대신에 듣보잡 벌레들이 마구 극성을 부렸지만 모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모기가 급감한 것은 사실이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7월 8~14일 전국 10개 지점에서 채집한 모기 수는 평균 971개체로 최근 5년(2013년-2017년) 같은 기간 평균 모기 개체수 1392개에 비해 30.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날씨가 더우면 모기가 더 기승을 부리는 법인데 왜 모기가 줄어든 것일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별로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모기가 급감한 가장 큰 원인은 ‘더위’ 때문이었다. 모기는 파충류, 양서류와 같이 자체 체온이 없는 변온동물로서 외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한다. 따라서 겨울철이 되면 기온 하강으로 체온도 떨어져 대사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모기가 겨울잠을 자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 기인하는 것이다. 반대로 여름철에 온도가 올라가면 체온 상승으로 몸에서 화학반응이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성장속도가 빨라져 개체수가 늘어나게 된다. 여름철에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기온이 지나치게 높게 되면 몸의 밸런스가 깨지고 호르몬 이상 분비로 성장속도가 빨라지는 반면에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명횡사하는 모기가 많다는 말이다.

또다른 한가지 이유는 모기의 이상한 잠버릇 때문이다. 모기는 보통 여름철 한낮에는 활동을 하지 않다가 기온이 떨어지는 저녁 이후나 새벽녘에 활동을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우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햇빛을 피해 지하실이나 터널 등 습한 지역에 들어가서 아예 나오지 않고 여름잠을 자버린다고 한다. 두 가지 이유 모두 폭염이 원인으로서, 모기의 고사망률·저출산율 덕택에 납량특집 드라마처럼 으스스한 강제 헌혈의 두려움은 덜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모기의 출산율 추락에 대한 반색도 잠시, 한 때 그들의 밥이었던 우리의 출산율을 돌아보면 우울해진다. 지난달 30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우리나라에서 들린 고고성(呱呱聲)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7.6%나 감소했다. 이로 볼 때 올해 출산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1명 밑으로 떨어진 0.98명보다 더 감소한 0.94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 예상보다 낮은 0.9명 이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출생아 수가 급감한 것은 장기 경기침체로 취업난과 실업난이 심화되면서 결혼건수가 줄어들고 생활고로 출산을 꺼리는 것이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가며 아동수당과 양육수당을 늘리는 등 출산율 높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병(病)에 맞지 않은 약만 들이부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날씨만 받쳐주면 언제든 출산율을 회복할 수 있는 모기의 능력이 부러워진다. 정녕 인간에게 있어 모기는 ‘넘사벽’과 같은 존재란 말인가. 연일 무더위와 씨름하며 어느 땅속 깊은 동굴에서 여름잠을 자고 있을 모기들을 생각해 본다. 나도 여름나절 동안 폭염을 피해 몸을 숨길 만한 곳은 어디 없을까?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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