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서 만난 아내… 난 ‘행운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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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서 만난 아내… 난 ‘행운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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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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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무작정 원양어선 올라
13년간 10여개국 항구 돌아
아내와 맞선본 후 끙끙 앓자
동생이 편지 보내 결혼 성공
40여년간 마당 넓은 집에서
아이 낳으며 행운 이어가
최영락·이상애 부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9년 결혼식 기념사진.
최영락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평생 물질(뱃일)만 하다 보니 학력도 짧고 특히 말주변이 없었죠. 선보고 와서 끙끙 앓고 있는데 남동생이 써준 간절한 편지로 아내와 결혼하게 됐으니 정말 행운이죠. 미끼 없이 대어를 낚은 셈이죠.”

바닷가인 청하면 청진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린 나이에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심각한 고민을 해야 했다. 딸 다섯, 아들 둘, 7남매 중 맏아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대신해 대가족의 생계를 짊어지다보니 청하면 이가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4살 때부터 동네 어촌에서 ‘머구리’(잠수)로 고기 잡는 일을 하기도 했다.

20살 때 무작정 부산으로 떠나 1974년부터 원양어선을 탔다. 그 때 망망대해에 나가 돈을 쓰지않으면서도 꼬박 꼬박 집으로 월급을 보내주니 그 일만큼 좋은 일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골병이 드는 일이었다. 한번 나가면 3년, 바다위에서 외롭고 힘든 세월과의 싸움이었다. 트롤어선을 타고 세네갈, 스페인 라스팔마스, 베링해 먼 바다에 나가는 생활은 쉽지 않았다. 13년 동안 원양어선을 타면서 10여 개국의 이름 모를 항구를 다 돌아봤다.

어떨 땐 충돌사고로 죽을 고비도 넘겼고 베네수엘라 해역에서는 조업중 해역침범과 관련해 붙잡혀 40일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처음 원양어선을 타고 돌아왔을 때 지금 아내가 된 부산아가씨 이상애(68)와 맞선을 봤다. 장인은 총각이 등빨좋다고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집에 돌아와 끙끙 앓아누웠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장가가긴 걸렀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 때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남동생이 예비 형수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생은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3장의 장문편지를 부산으로 보냈다. 내용은 “형님이 돌아와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가슴이 아픕니다. 정말 형수님으로 꼭 모시고 싶습니다. 집에 가진 것은 없어도 형님은 정말 착하고 생활력도 강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 형수님을 기다립니다” 이런 식이었다.

아내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결국 그 간절한 편지 한통 때문에 이 집 식구가 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중년의 나이를 넘긴 그 시동생은 지금도 형수에게 깍듯이 잘하고 있다. 여하튼 이런 사연으로 우리 부부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 마당에서 1976년 약혼을 하고 큰 아들 낳고 1979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하고서도 가족을 뒤로하고 더 먼 바다에 나갔다. 원양어선을 타면서 죽을 고생을 하고 나서야 지난 1983년 고향 청진리 바다로 돌아와 16년 동안 포항제철소 협력회사로 출퇴근했다. 그 후에는 작은 배(1.5t)를 사서 소일삼아 고기를 잡았는데 그나마 당뇨도 심해지고 관절이 좋지 않아 지난해에 배를 팔았다.

그런데 부산처녀가 이 시골 어촌에 시집오는 첫날부터 눈물을 흘린다. 여동생 두명으로 알고 왔는데 막상 오니 숨겨둔(속인) 여동생들이 줄줄이 3명이나 더 있고 뒷집에는 시할머니까지 살고 계셨다니 정말 놀랄따름이다. 게다가 곤로도 연탄불도 아닌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지어야 하고 수돗물 없이 우물물로 세탁을 하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마누라는 치매를 앓다가 3년전 94살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집에서 극진히 모신 효부다. 그래서 동네에서도 그 효성에 소문이 자자했다. 이러니 망망대해에서 ‘대어’(大魚)를 건져 올린 행운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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