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못 키우는 불신의 정치
  • 모용복기자
버섯 못 키우는 불신의 정치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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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이 大物로 자랄 때까지
꺾지 않고 기다리는 산사람
양보와 배려심에 깊은 감명
조국 이어 이번엔 검찰개혁
여야 공수처법안 입법 놓고
한 치의 양보없는 대결양상
不信과 탐욕만이 판을 치는
정치판엔 대물 버섯 씨말라
양보와 배려의 정치 아쉽다
해발 1000m가 넘는 강원도 정선의 어느 높은 산. 약성 식용버섯 채취꾼 이형설 씨가 올해 마지막 버섯 채취에 나섰다. 전날 산행에서 물 좋은 일등급 표고버섯을 발견한 기쁨도 잠시, 태풍의 영향으로 갑자기 밀려드는 먹구름 탓에 서둘러 하산을 한 터라 발걸음이 더욱 바빴다.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좋아져 동행자와 함께 다시 산행길에 나선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헤맸지만 연이은 가을태풍으로 인한 잦은 강우(降雨)로 버섯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대로 허탕을 치는가 싶던 찰나 어른 머리 만한 하얀 노루궁뎅이버섯이 눈앞에 나타났다. 20만 원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크기라고 하니 완전히 헛걸음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거친 산길을 오르던 그들 앞에 우뚝선 뽕나무 고사목(枯死木)에 누르스름한 솜털 모양의 버섯이 줄줄이 달려 있는 게 아닌가. 버섯 중 으뜸으로 친다는 상황버섯이었다. 1킬로그램에 500만~800만원을 호가(好價)한다는 상황버섯이 한 눈에도 몇 킬로그램은 돼 보였다.

대박이었다. 그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버섯을 그대로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하산할 때 따려는 것인가? 동행 취재에 나선 리포터가 “왜 버섯을 채취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형설 씨는 “아쉽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아 그냥 둘 수밖에 없어요. 만약 덜 자란 버섯을 마구 채취해 버리면 산이 황폐하게 되고 맙니다”라고 대답했다. 미심쩍은 마음에 리포터가 “그럼 다른 사람이 먼저 채취해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다시 물으니 돌아온 이형설 씨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럼 그 사람 게 되는 거지요. 1~2년까지 운 좋게 남의 눈에 띄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우리 게 되는 거고요, 하하~”

얼마 전 EBS에서 방영한 ‘극한직업’에 나온 약성 식용버섯 채취꾼의 얘기에 필자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비록 덜 자라긴 했지만 수백만 원은 족히 넘는 상황버섯을 대물(大物)로 자랄 때까지 꺾지 않는 여유로움과, 남의 차지가 되는 것까지도 용인(容認)하는 양보심.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대물 못지 않게 크게 느껴졌다. 도대체 저들의 큰마음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까지 했다.

그에 비하면 도회지에서 하루하루 이전투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부박(浮薄)한가. 특히 연일 ‘총성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정치판은 여유와 양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 단어가 된 지 오래다. 여야는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양 진영으로 갈려 한 치 양보 없는 세(勢) 대결을 팽팽히 이어오다 그의 도중하차로 대결국면이 시들해지니 이번에는 검찰개혁을 놓고 건곤일척(乾坤一擲) 승부를 벌일 태세다. 그 중심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자리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법안의 본회의 부의(附議) 시점을 29일로 보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법안 가운데서도 최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강공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야 4당과의 재공조를 통해 법안처리 강행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반면에 한국당은 공수처 법안에 대한 원천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강력저지에 나서고 있어 여야간 또 한 번 피 튀기는 무력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야간 공수처법 대립은 현재 대한민국 국민분열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법안의 내용보다는 추진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에 맹목적으로 동조하고 가세해 세 대결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장 정치가 국회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여도 야도 검찰개혁에는 모두가 찬성한다. 그런데 민주당에서는 공수처의 입법만이 수사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 권한을 분산시켜 진정한 검찰개혁을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한국당은 공수처가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꼼수이며 문재인 정권의 칼잡이로서 야당을 탄압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사실 양쪽의 팽팽한 주장과 대립은 결코 풀지 못할 난제가 아니다. 공수처장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정치적 중립성만 확고하게 보장할 수 있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민주당은 중립성 확보를 통해 야당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으며, 한국당은 공수처가 오히려 현 정권을 압박해 운신(運身)의 폭을 좁게 만드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어 결코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내용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을 벌인다면 충분히 묘책이 도출될 수 있음에도 한사코 손사래만 친다. 서로에 대한 불신(不信)의 골이 깊을대로 깊기 때문이다.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배려나 자비심을 기대할 수 없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탐욕이 차고 넘치면 눈에 뵈는 것이 없다. 덜 자란 버섯이라고 그냥 둘 리 만무하다. 비록 설익은 버섯일지라도 상대가 가지면 안 되기 때문에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정치판에는 대물 버섯이 씨가 말라 버렸다. 좋은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연목구어(緣木求魚)보다 더 어렵다. 조선 천지에서 날고 긴다는 똑똑한 사람들이 다 모인 국회에서 산(山) 사람 한 명보다 나은 식견(識見)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 정치판이 황폐화 되고 그 속에서 양보와 배려의 정치가 싹틀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나.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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