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산골 베테랑 운전수 이잠순 “천국보다 이곳이 더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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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 베테랑 운전수 이잠순 “천국보다 이곳이 더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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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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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시집올 때 기계가 많아
‘기계면’ 인가 생각 했는데
막상와보니 너무 깊은 산골
1남 3녀 키우다 보니 학교
병원갈 일 많아 운전 시작
경치 좋고 공기까지 좋은데
친구도 있으니 이곳이 낙원
남부럽지 않은 노후
친구들과
전통혼례
갓 시집와 동네친구들과 한 컷.
남편과 손자.

이잠순의 포항이야기<7>

“아이고 말도 마소, 골짜기 골짜기라 캐도 이렇게 골짜기인줄 모르고 시집왔더니…‘죽을 고생’이 떡 기다리고 있데요.”

신광면 사정리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안강와서 살고 있을 때 신랑과 시아버지, 시어머니 되실 분이 집으로 찾아와 선을 보고 가면서 ‘기계’에 산다고 말해 “기계가 많아서 기계인 갑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집을 와보니 기계면 중에서도 계전리 이 골짜기는 정말 너무 깊은 두메산골이었다.

귀하게 자라 보리밥도 안먹고 컸는데 이곳은 전기와 수도는 아예 없고 산을 개간해 밭을 일구고 겨우 담배농사로 먹고 살고 있었다. 면소재지까지는 3시간이나 걸어가야 하고 애들 학교도 1시간 남짓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거기다가 남편은 7남매의 맏이였다.

처음에는 기가차서 말도 안 나오던데 그래도 정붙이고 살면서 야산 수십개를 개간하고 나니 이렇게 새집도 짓고 산다. 그 사이 내가 사랑하는 두 남자는 벌써 세상에 없어 애석하지만 함께 사는 아들 며느리랑 손자손녀 보고 산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6·25사변이 났을때 첫돌인데 아버지가 이듬해 면사무소 불발탄 수거작업 중 폭발해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그 바람에 4남매 키우느라 엄마가 무척 고생을 했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니 꿈에도 안 나타나요. 19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30살도 안되었을 때 남편 잃고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는 병원생활을 오래오래 하다 몇년 전 9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또 한 남자. 제가 소띠고 두 살 많은 돼지띠였던 남편 손정호씨는 뇌졸중으로 너무 이른 나이인 63살에 세상을 등졌다.

1973년인가 내가 23살 때 안강 친정에서 구식 결혼식을 올리고 이 계전리에서 맏이이자 가장으로 가족부양하며 동생들 다 출가시키고 무쇠처럼 일만하다 돌아가셨다. 그나마 우리가 1남 3녀를 낳았는데 아들딸 다 결혼시켰으니 다행이죠. 큰 딸은 경기도로 시집가고 둘째딸은 용흥동에 살고 막내딸은 오천에 살림을 차렸다.

여기서 이만큼 일구고 사는 것도 어찌보면 기적 같고 또 꿈만 같다. 산을 몇 개나 태워서 개간하고 고구마, 감자를 심었는지 모른다. 둘째 딸을 낳고 나니 그때 전기가 들어왔다.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학교 갈 일 병원갈 일이 자꾸 생기는데 운전면허증조차 없는 신랑만 믿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결심을 했다. 이 동네에서 화봉리 기동초등학교 까지는 9㎞가 넘는다. 그래서 46살 때 운전을 배워 몇 차례 낙방 끝에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이 골짜기 길을 수없이 오가다 보니 지금은 눈감고도 지프차를 운전해 포항까지 잘도 다녀온다.

운전대를 잡고 보니 욕심이 생겨 특용작물을 재배해 포항시내에서 팔았다. 한 때 인기있던 야콘을 1t 트럭에 한가득 싣고 아파트단지마다 팔러다녔는데 1년만에 1억원을 벌어 그 많던 빚도 다 갚았다. 애들 다 키우고, 내가 운전할 줄알고 하니 이 골짜기가 지금은 천국보다 좋다. 공기좋지, 경치는 스위스 알프스하고 비슷하고, 또 동네에 말동무들도 몇 명 있어 심심하지도 않고…. 내 스스로에게도 칭찬해본다. 소띠 이잠순, 참말로 고생 마이 했데이~.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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