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란’ 유감
  • 모용복기자
‘마스크 대란’ 유감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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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 국민불안 확산
마스크 구매 열풍 뜨거워
국민의 불안 심리 악용해
한탕 노린 악덕업자 기승
감염병보다 더 심한 재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어
우리는 고난에 강한 민족
과거의 소중한 경험 살려
의연하게 대처해 나갔으면
모용복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폐렴) 환자가 국내에서도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어제 9일까지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는 27명이며, 이중 3명은 완치돼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국내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뚜렷한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수단인 마스크를 확보하려는 국민들의 구매열풍이 뜨겁다. 하지만 구매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품귀현상이 빚어져 기껏해야 하나에 오천원, 만원 하던 것이 온라인상에 몇 배를 호가해 팔리고 있으며, 이마저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필자가 있는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에는 아직 ‘우한폐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우환이 들리지 않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란 놈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요, 또 누가 확진자인지 접촉자인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우리 지역이라고 마냥 안심할 수만도 없다. 그래도 거리를 오가는 시민 절반 가량이 맨얼굴인 걸 보면 코로나바이러스 공포가 우리 지역을 엄습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마스크 대란’ 얘기가 딴 나라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약국에서 마스크 몇 개를 살까 하다 서랍을 열어보니 하얀색, 파란색 면 마스크 몇 개가 눈에 띈다. 최근 몇 년 들어 감기에 걸린 적이 없던 터라 착용한 지 꽤 오래된 낡은 것들이다. 이 마스크들이 신종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아줄지 어떨지는 몰라도 그래도 용케 쓰레기통으로 향하지 않고 살아남아 있으니 고맙고 반갑다. 구겨진 마스크들을 펼쳐 차곡차곡 쟁이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삼한사미(三寒四微)란 유행어처럼 미세먼지가 일상화 된 지 오래인데 대부분 마스크 몇 개쯤은 갖고 있는 거 아냐?” “구태여 이 와중에 한꺼번에 구매하려 들 필요가 있을까?”

마스크에 대한 광폭 수요는 필경 불안감이 부른 현상이다. 신종 감염증의 확산과 치명적인 파괴력,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데 대한 막연한 공포가 최소한의 대비책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불안심리를 충동질해 구매심리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가 지난 7일까지 매일 오전 11시에 마스크 20만장을 내놓자마자 삽시간에 완판된 것만 봐도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 불안심리를 이용해 한몫을 챙기려는 양심불량 판매업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고객의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가격을 올리거나, 마스크 광고를 미끼로 이용해 다른 물건을 주문토록 유도하는 상술로 소비자를 기만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인 재난 상황에서 불안심리를 이용해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행위는 국민 불안과 사회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더 기막힌 일도 있다. 최근 한 지자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지용으로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마스크를 일반인들에게 되파는 수법으로 이득을 챙긴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KF94 마스크를 개당 1800원에 판매한다며 광고하고 제품을 사진으로 촬영해 첨부했다. 지자체가 제작해 마스크를 싼 포장지까지 버젓이 함께 올렸다.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일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숱한 고난 속에서 힘을 키워온 민족이다. 평소에는 서로 물어뜯고 싸우다가도 재난이 닥치면 잡았던 멱살을 놓고 힘을 합해 위기를 극복해낸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멀리는 왜(倭)와 오랑캐의 침범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경향각지에서 의병들이 분기탱천 떨쳐 일어나 극난을 극복해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의 수탈에 맞서 국채보상운동을 펼쳐 주권을 지켜내고자 했다. 그리고 가까이로는 IMF 외환위기로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자 코흘리개부터 백발노인까지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우리 한민족이요 대한국민이다.

그 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어떠한가. 중국발(發) 감염증 유입으로 잇달아 환자가 발생하자 나라 안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 온통 난리법석이다. 정치권은 서로 ‘잘 했네’ ‘못 했네’ 헐뜯기에 여념 없으며, 국민들 사이에는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사람들, 그들의 불안 심리를 악용해 한탕을 노리는 악덕업자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감염병 하나에도 이럴진대 전쟁과 같이 더한 국가위기상황이 닥치면 그 때는 어찌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재난은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은 오직 국민의 단결된 힘으로부터 나온다. 이기심으로 가득 찬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분오열로 갈라져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대한민국호(號)의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처럼 재난상황에 차분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민족의 슬기를 보고 싶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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