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리더십’ 과 총선
  • 모용복기자
‘봉준호 리더십’ 과 총선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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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오스카 4관왕 수상
세계 영화사 새로 쓴 쾌거
영화 못지않게 봉준호 감독
한국식 겸손과 배려 매너로
할리우드 감동의 무대 연출
분노·갈등만 남은 한국정치
이번 총선엔 봉준호와 닮은
감동 주는 정치인 나왔으면
모용복 기자
지난해 여름, 방학을 맞은 아내와 모처럼 영화를 봤다. 블록버스터류(類)의 스펙터클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했다. 특히 주인공 일가족이 속임수를 써 생계의 끈을 대고 기생하는 집주인 부부에게 정체가 탄로날 뻔한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아내는 아예 고개를 돌렸다. 나도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

영화는 운전기사인 주인공이 집주인 남자를 칼로 찌르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며, 그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 지하세계로 스스로 스며들면서 우리 사회에 부자(富者)와 빈자(貧者) 사이의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존재를 재확인시켜준다. 적절한 해학과 웃음, 긴장을 통해 재미를 잘 살리면서도 한편으론 사회 문제까지도 녹여낸 참 잘 만든 국산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무조건 재미 있고 봐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필자에게도 긴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국내외 영화제 수상으로 세간에 회자되는가 싶더니 반년이 지나 들려온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는 보도였다. 그것도 최고 권위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싹쓸이 한 것이다. 국내와 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역대급 사건이었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도 수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요, 외국어로 된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초유의 일이다. 또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은 1956년 델버트 만 감독의 ‘마티’ 이후 65년 만이라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를 우울하게 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를 집어삼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이야기다.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세계 영화계에 던진 충격파는 그 어떤 수사(修辭)를 동원해도 모자랄 성 싶다. 그러나 영화 못지않게 전 세계를 압도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봉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여준 한국식 매너에 할리우드가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세 번째 트로피를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른 봉 감독은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제가 영화 공부할 때 가슴에 새긴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인데 그 말을 하신 분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라면서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상을 받을 줄 정말 몰랐다”며 스코세이지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스코세이지 감독을 비롯한 관객 모두가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뜨거운 찬사에 감격한 스코세이지는 봉 감독에게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기도 했다.

또 다른 경쟁자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향해서도 “미국의 관객들이나 사람들이 아직 제 영화를 모를 리스트에 뽑아준 데 감사드린다”며 “형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어 “후보에 오른 다른 감독들도 다들 존경하는 분들인데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5등분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자 객석에서는 폭소와 함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해 뉴욕포스트 평론가 조니 올렉신스키는 “수상자가 동료 경쟁자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패배자가 진정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나. 이는 봉 감독이 동료 후보자였던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한 일”이라고 칭송했다. 아마 봉 감독의 찬사에 감동한 스코세이지 감독의 눈물이 카메라에 포착된 모양이다.

이렇듯 경쟁자조차 눈물짓게 만든 봉 감독의 힘은 어디서 온 걸까?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공(公)을 남에게 돌리는 겸손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평소 영화를 찍을 때 연기에 대해 지적하기보다 칭찬을 많이 한다고 배우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그래서 그의 인품에 감화된 나머지 힘든 주문도 거절할 수가 없다고 한다. 겸손과 칭찬을 통해 배우로부터 최선의 연기를 끌어냄으로써 마침내 최고의 작품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봉 감독은 평소 몸에 밴 겸손을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장을 감동의 무대로 연출했다. 그것도 세계 영화계 거장들을 상대로 말이다.

오스카에서 수상하기 위해선 각 부문 투표권을 가진 수천 명의 미국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들을 상대로 홍보작업 비용으로 수백억 원을 쓰는 게 보통이다. CJ그룹도 이번 ‘오스카 캠페인’에 1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총성 없는 전장’에서 4관왕이라는 업적을 창조한 ‘위대한 승자’ 봉준호 감독에게 패자들도 기꺼이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그의 겸손이 만들어낸 감동의 눈물이 패배의 쓰라림을 씻어내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때 승자가 패자를 위해 배려의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풀 한포기 없는 사막과 같은 경쟁만 남게 된다. 감동은커녕 끊임없는 반목과 질시, 갈등이 계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가 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찍어 내리고 권좌(權座)를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가 난무하는 곳. 승자에게는 축배가 있고 패자에게는 오직 쓴잔만 주어질 뿐이다. 이것이 반복돼온 것이 우리 정치사다. 그러는 사이 여야 간 협치는 실종되었으며 사생결단식의 분노와 갈등만 남게 된 것이다.

기생충의 낭보에 정치권도 “한국문화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한 쾌거”라며 모처럼 한 목소리로 축하를 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생충’과 봉준호를 총선에 활용하려는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넘어 할리우드를 감동의 무대로 연출한 ‘인간 봉준호’를 닮겠다는 정치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 눈엔 오스카상만 있고 봉 감독의 겸손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쯤 우리 정치도 승자와 패자가 서로 박수를 보내며 한데 어우러지는 감동의 정치가 실현될수 있을까? ‘봉준호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금배지는 ‘따논 당상’일텐데 말이다. 이번 총선에선 막말과 분열의 정치인이 아닌 봉 감독처럼 상대를 배려하고 칭찬할 줄 아는 겸손의 미덕을 지닌 정치인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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