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 김대욱기자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 김대욱기자
  • 승인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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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특히 아카데미상 92년 역사에서 비영어권 영화가 그해 최고의 영화에게 수여하는 작품상을 수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전 세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생충 신드롬’마저 일 정도다. 이같은 영화의 대성공에 힘입어 봉준호 감독은 명실공히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런 봉 감독을 보면서 필자는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1980년대 후반이던 그 때는 ‘대학 입시지옥’이라 불릴 정도여서 필자는 고교시절 3년 내내 아침 일찍 등교해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교할 수 있었다. 한 교실에 60명이나 모아놓고 선풍기 몇 대로 푹푹찌는 한 여름을 보낸 기억은 아직도 고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입시지옥에서 유일한 위안 거리가 영화였다. 그 당시는 영화외에는 이렇다할 문화체험 거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중간고사 등의 시험 후 전교생이 단체로 영화 관람을 하면서 ‘문화교실’이라는 명칭을 붙였겠는가. 필자는 중소도시에서 고교를 다녔는데 지금은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가끔 대중가수의 공연이나 뮤지컬까지 관람할 정도로 다소나마 문화를 향유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영화 관람이 전부였다.

그 때 감상한 ‘더티댄싱’이나 ‘플래툰’과 같은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로 아직도 깊이 각인돼 있다.

하루는 친구들과 더티댄싱을 보러갔는 데 시내 모 여고생들이 소풍 후 단체로 관람을 와 있었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 하나에 환호하며 박수치는 소녀들과 함께 영화를 본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런 가운데 필자는 유일한 낙이었던 영화를 보면서 남몰래 꿈을 가졌다. 그건 바로 영화 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영화는 입시지옥이라는 현실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됐고 나도 나중에 영화감독이 돼 좋은 영화를 만들어 힘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대학에 진학한 후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50대에 접어든 지금은 영화관에조차 잘 가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정말 재밌다는 영화든, 1000만 관객이 넘게 본 영화든 극장을 나올 때 그 영화에 대해 별로 생각나는게 없고 별다른 감흥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 대해 혹자는 나이가 들어 감수성이 떨어졌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요즘 영화가 너무 소비적이어서 보고 나도 남는게 없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영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로 받아들여져 왔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감독상과 작품상 수상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과거 외신을 통해 어떤 작품이 아카데미 몇 개 부문을 석권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참 대단한 영화구나’하면서 극장을 찾아 보곤 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우리 영화인 기생충이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실현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세계적인 유명 배우들과 거장 감독들의 축하를 받으며 상을 받는 모습은 매사 무덤덤해진 나를 무척 설레게 했다. 그 모습이 고교시절 내가 꿈꾸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어느덧 중년이 되면서 잠들어 있던 내 감수성을 다시 깨웠다.

고교시절 영화감독을 꿈꿨던 것처럼 이제 어쩌면 내 인생의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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