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벌기 위해 세계 곳곳 다녔지만 가장 편한 항구는 가정”
  • 경북도민일보
“돈 많이 벌기 위해 세계 곳곳 다녔지만 가장 편한 항구는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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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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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가 6남매 맏이로 태어나
돈 벌기 위해 월남전 파병에 지원
제대 후에는 원양어선에 몸 실어
아내와 정착 위해 참기름 가게 오픈
아내 헌신 덕분에 지금이 인생 황금기
권장섭 씨 부부 현재 모습.
권장섭 씨 참기름 가게 전경.
권장섭 씨 월남전 참전 당시 모습.
권장섭 씨 원양어선 타던 시절 모습.

권장섭의 포항이야기<20>

“파란만장한 삶은 아니었지만 정말 돈 벌기위해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월남전 참전은 물론 원양어선에 몸을 싣고 세계 곳곳의 많은 항구와 도시를 돌아다녀 봤지만 가장 편하고 오래 머물고 싶은 항구는 바로 ‘가정’ 이었다.

1949년생. 그 시절 우리 세대는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위해 숱한 몸부림을 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대들이다. 그런 격동의 물결가운데 포항시 흥해읍 남성 2동 가난한 농가의 6남매(5남1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래로 줄줄이 딸린 다섯 명의 동생들도 공부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항상 묵직하게 어깨를 짓눌러 온 ‘맏이’ 증후군 때문인지 일치감치 돈 벌러 고향을 떠나 닥치는대로 일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거들던 저는 1968년, 20대 초반 자원해서 해병대에 입대했다. 입대 이듬 해 일병을 갓 달았을 무렵 강원도지역 무장공비 토벌작전에 투입됐고 이어 10여 일간의 특별휴가가 주어졌지만 집에 오지 않았다. 대신 월남전 파병에 지원했다.

당연히 위험한 일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에 주저 없이 선택하고 말았다. 청룡부대 1여단2대대 1중대소속으로 배속된 흥해 촌놈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전쟁터로 파병돼 13개월 동안 베트남 호이얀지역 전투에 참전했다. 한창 혈기 넘칠 때였지만 항상 긴장해야 할 전쟁터인데다 무더운 날씨에 진지를 파고 매복을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밤마다 고향 ‘흥해’소식이 간절했다. 전쟁터의 향수병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전투에서 뿐 아니라 안전사고로 죽어가는 동료들의 시신을 지켜보는 것이 몸서리칠 고통이었다. 1년이 좀 넘는 월남전에서 돌아 온 후 병장으로 제대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정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원양어선을 타는 일이었다. 트롤어선을 타고 4년 이상 스페인 라스팔마스와 캐나다, 페루, 프랑스 등 낯선 외국의 항구를 떠돌며 일을 했고 그 월급은 고스란히 고향에 계신 어머니한테 부쳤다.

그렇게 오랜 외유생활에 지칠 무렵 짝을 만나고 싶었다. 당시로서는 노총각에 드는 34살 되던 해 1981년 1월, 신광 상읍리에 사는 지금의 아내 이금자(65)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가정을 갖고 난 후 더 이상 외유가 힘들어 국내 화물상선으로 옮겨타고 포항과 인천을 오가며 포스코 코일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트롤어선이나 외항선과 달리 국내에서 배를 탔지만 집에 오는 날은 일주일에 한 차례, 그 것도 빨래가방을 들고 와서 하숙생처럼 하루 밤 자고 떠나는 나그네 생활이 지겨웠다.

그래서 아이들 학비도 마련할 겸 정착하기 위해 흥해읍내에 참기름 가게를 내 아내와 같이 장사를 시작한 게 벌써 20년이 지났다. 장사 처음에는 서툴러 참깨를 볶다가 홀랑 태워서 낭패를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베테랑이 됐다. 동생들 공부시켜 시집장가 보내고 1남 1녀 다 성장시키고 허리를 펴보니 벌써 70이 됐다. 돌이켜 보면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다. 아버지는 90살 나이로 돌아가셨지만 치매 걸린 시아버지를 13년이나 지극정성으로 병수발한 아내. 주말이 되면 집에 찾아오는 시동생 시누이 아이들까지 키워가며 무던히 헌신해준 아내가 무척 고맙다. 아내의 이런 헌신 덕분에 ‘흥해 옥산참기름집’에서 번져 나오는 구수한 참기름 내음처럼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이자 제2의 신혼때처럼 느껴진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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