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지금은 정치의 시간이 아니다
  • 모용복기자
코리아, 지금은 정치의 시간이 아니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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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선거운동 실종
여야 막바지 공천작업 한창
후보들 얼굴 알릴 길 막혀
국민들도 총선 잊은지 오래
깜깜이 선거 전락 불문가지
지금은 정치의 시간 아니다
정치시계 조금 뒤로 돌리고
재난극복을 위해 힘 모아야
모용복 기자
모용복 기자
중국 우한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이 뒤숭숭하다. 특히 대구경북은 자고나면 확진자가 수백명이나 불어나는 등 초상집이나 다름없다. 평일인데도 거리에는 사람구경 하기 힘들고, 주말·휴일 인파로 북적이던 공원이나 유원지는 적막강산이다. 코로나19가 그려놓은 풍경화다. 더욱 놀라운 변화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거다. 21대 총선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가 오늘 자(2일)로 불과 한 달 열사흘 밖에 남지 않았지만 컬러풀한 옷을 입고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는 선거운동원도, 앞서거니 뒤서기니 일터를 찾아와 손을 내미는 출마자들도 모두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코로나 공포로 대한민국 전역이 마비된 가운데서도 여야는 ‘총선 방정식’ 필승 해법을 위한 막바지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각 당은 공천 후유증으로 자칫 성난 유권자들의 눈 밖에 나서 역풍이라도 맞을라 살얼음판이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필드 플레이어(후보자)들도 마찬가지. 아마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천을 획득한 선수들은 선거 전까지 얼굴을 알리기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야 한다. 발걸음 수와 유권자와 잡은 손의 횟수가 표와 상쇄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1분 1초라도 더 뛰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라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 나타나 장차 큰일을 할 의원님들(예비)의 앞길을 가로막았으니 울화통이 치미다 못해 화병이 생길 만도 하다.

유권자인 국민들은 아예 총선을 잊은 지 오래다. 자고나면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망자가 추가되는 등 잘못하다간 생명을 부지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는 뭐고 선거는 또 뭐란 말인가. 오직 그들 뇌리에는 늘어나는 확진자 수와 바이러스를 막아줄 방패막이인 마스크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알 길 없는 선거권자와 알릴 길이 없는 피선거권자 모두 깜깜이가 된 선거에서 제대로 된 정치인을 발굴하기란 ‘소 뒷걸음질하다 쥐 잡는 격’이 될 게 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 일정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건 지역구 주민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하등 이로울 게 없다. 총선 연기론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총선 연기가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 법으로 정한 선거일정을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여반장(如反掌) 하듯 바꾼다면 심각한 사회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그래서 6·25전쟁 중인 1952년 8월에도 제2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으며, 세월호 참사로 국민적 애도 분위기 속에서도 선거 연기론을 뒤로하고 전국지방동시선거가 치러진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코로나19가 대구경북을 넘어 전국으로 번지고 있는 국가 재난상황에서 굳이 ‘깜깜이 선거’를 치러야 할 이유가 열에 하나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코로나 사태가 이대로 선거 때까지 이어진다면 선거운동은 물론이고 노약자를 포함해 대다수 국민들이 투표장에 가는 것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러고도 제대로 된 선거라 말할 수 있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사태로 사실상 개점휴업 중인 식물국회는 재외선거인명부 작성이 시작된 지난달 26일까지도 선거구 획정을 결론 짓지 못했다. 이 바람에 지역구별 명부작성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통합 혹은 분구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예비후보들은 자신의 지역구가 어디인지도 몰라 대혼란에 빠져 있다. 자신이 출마할 곳을 모르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 선거운동을 펼쳤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을뿐더러 유권자들도 자기 지역구에 누가 선수로 등판하게 될지 몰라 애당초 올바른 표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해온 행태로 봐선 여야가 합의한 이달 5일 본회의 처리조차 낙관할 수가 없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1년 전에 선거구 획정을 끝마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거일을 턱밑에 둔 시점까지도 ‘밥그릇 싸움’으로 국민의 밥 먹을 권리(투표권)를 빼앗고 있는 국회의 잘못이 적지 않다. 직무유기도 이만한 직무유기가 없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빈껍데기’만 될 게 뻔한 4월 선거를 치러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현행 공직선거법 196조 1항도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선거를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하지 못한 때에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에 부합하는 경우다. 물론 헌정 사상 선거를 연기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건 사실이지만 국민안위와 국가 장래를 위해 무엇이 가장 현명한 결정인지 생각해야 한다. 전례는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정치의 시간이 아니다. 재난 극복을 위한 국민 단결이 필요한 때이다. 정부, 정치권, 국민 할 것 없이 모두 힘을 모아 초유의 재난상황을 극복해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대통령이나 거대 정당들이 앞다퉈 총선 연기를 공론화 테이블에 올리는 게 순리인데도 일부 군소 정당을 제외하고 아직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당리당략의 정치 셈법이 작용한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이 있고 정치가 있듯 총선이 국민안위보다 우선 될 수는 없다. 지금은 분명 재난 극복을 위한 국민의 시간이다. 국민의 시간을 위해 정치 시계를 조금 뒤로 돌리는 것은 백번 천번 온당한 일이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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