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가 멈췄다
  • 모용복기자
풍차가 멈췄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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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으로 ‘블랙아웃’
사태를 키운 건 정부 책임
국민의 회초리 달게 받아야
재난장관 대응 놓고 엇박자
오락가락 마스크 권고 안에
국민들은 현기증이 날 지경
최일선서 사투 벌이고 있는
영웅들 있기에 희망은 있다
모용복 기자
우리 집에서는 풍력발전기(이하 풍차)가 보인다. 아파트 거실 소파에 누워 풍차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사를 하고 보니 푸른 솔숲이 능선을 이룬 자연과 인공미가 조화를 이룬 풍경화가 덤으로 생겼다. 돈 한 푼 안들이고 이만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됐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매일 쉼 없이 돌아가는 6대의 풍차. 그런데 어느 날 딱 한 번 이것이 멈춰선 것을 본 적이 있다.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만약 이 풍차들이 대한민국 전체 전기를 생산한다면 어떻게 될까?”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로 천지가 캄캄해짐).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머릿속이 이런 상태가 아닌가 싶다. 전기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19라는 악명 높은 미생물 얘기다. 자고나면 불어나는 확진자 증가 소식에 일상생활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매주 “이번 주가 고비”라고 했지만 확진자 수는 크게 줄지 않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앞으로 1~2주가 분수령”이라며 슬쩍 기간을 늘렸다. 쏟아지는 비판에 어물쩍 물 타기를 한 모양새다.

정부라고 제멋대로 확산되는 바이러스 신천지 세상에서 이들을 단박에 쓸어버릴 뾰족한 수가 있으랴마는 정부의 고무줄 전망이 코로나 못지않게 국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비록 국민들의 쓴소리가 아플지라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상황에선 근본 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감염증이 이처럼 확산한데 대해 무한책임을 가진 곳은 오직 정부다. 따라서 단말(甘言)로 국민 회초리를 모면하기보다 달게 받는 편이 낫다. 더욱 가관은 재난관리를 책임진 장관들의 행태다. 진영 행안부 장관은 최근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정부 조치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진 장관은 정부의 미숙한 초기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여야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행안부 장관으로서 국민이 고통받고 계신 데 대해 사과드리고 싶다”며 “방역에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코로나19 확산 원인을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으로 지목한 데 대해 “어떤 근거도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앞서 박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법사위에서 “코로나19 확산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감염병과 재난 관련 주무부처 장관들이 국회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엇갈린 발언을 한 것이다. 감염증이 끝 모르게 확산하고 있는 미증유(未曾有)의 재난상황에서 주무부처 수장들의 이 같은 촌극을 바라보는 국민들 심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결국 박 장관이 확실하지도 않은 조사결과를 국회의원들에 대한 방패막이로 활용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는 한술 더 떴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왜 중국인 입국을 전면금지 하지 않느냐는 비판에 대해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는 중국인보다 중국으로 향하는 우리 국민 수가 두 배 가까이 더 많은 상황”이라며 실익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가 밝힌 입국자 통계를 보면, 후베이성 이외 지역에서 국내에 입국한 중국인은 지난 2월 26일 1404명, 그 전날인 25일에는 1824명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반면에 중국에 입국하는 한국인 숫자는 2월 들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월 25일 3337명, 2월 26일 3697명으로 방중 한국인이 두 배 가까이 더 많다. 따라서 1000명대로 떨어진 중국인 입국을 막기 위해 전면 입국 금지를 하는 것은 자칫 우리 국민 피해를 유발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법무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청와대가 밝힌 방중 한국인 수는 실은 자국으로 출국한 중국인들이었다. 자료에는 중국인 입국자가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중국인 출국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라기보다 청와대가 중국인 입국자 전면금지 주장을 반박하는 데 유리한 통계를 들이대기 위해 출국자 국적을 고의로 둔갑시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 있는 풍력발전기. 흥해읍 초곡지구 아파트 거실에서 6기가 보인다.

오락가락 하는 마스크 권고지침도 논란거리다. 보건당국은 지난 4일 감염우려가 없다면 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깨끗한 보건용 마스크는 재사용토록 하는 권고안을 내놨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믿을 수 없다”며 비판 목소리를 쏟아냈다. 앞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면 마스크가 아닌 보건용 마스크인 KF(Korea Filter) 마스크‘ 사용을 권장한 것과 다른 내용이기 때문이다. KF 마스크 사용을 놓고도 지난 1월 말 식약처와 질병관리본부는 KF94 이상 착용을 권고했다. 그런데 지난 달 초 중앙사고수습본부는 KF80을 권고하고 나섰다. 열흘도 안 돼 권고안이 또 바뀐 것이다. 보건당국의 오락가락 지침에 국민들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정부 권고안이 이처럼 조변석개(朝變夕改) 하는 이유는 마스크 대란(大亂)과 관계가 있다. 코로나19 감염자 폭증으로 마스크 품절사태가 빚어지자 보건 당국 권고안도 갈수록 하향조정 됐다. 비록 감염증 차단 효과가 낮더라도 마스크 대란은 피하고 보자는 고육지책(苦肉之策)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이 일어난 데에는 정부의 잘못이 크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세계보건기구(WHO)는 호흡기 증상이 있을 경우에만 마스크 사용을 권고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일반인들에게도 검역용(KF94) 착용을 권고했다. 마스크 품귀현상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이제와서 허둥지둥 대책을 강구해 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만 꼴이다.

멈춰선 풍차야 바람이 불면 다시 돌 터이지만 실추된 신뢰를 다시 돌리기는 지난(至難)한 일이다. 코로나로 머리가 돌 지경인 국민들은 정부와 보국당국의 오락가락 감염증 대책에 폭발 직전이다. 그나마 전장(戰場)의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기에 꽃피는 춘사월이 오면 ‘블랙아웃’ 대한민국호에 다시 동력이 돌고 불이 켜질 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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