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0만원, 그냥 버리시겠습니까?
  • 모용복기자
4700만원, 그냥 버리시겠습니까?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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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코로나19로 인해
불안감 속 치러지는 총선
역대 최장 투표용지 등장
기표란의 세로 폭 좁아져
잘못하단 무효표 될 수도
한표의 가치는 4700만원
무용지물 안 되게 주의를

4·15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4년간 국민을 대표해 국정운영에 참여할 선량(選良)을 뽑는 대한민국 최대 정치행사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속에서 선거 개최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선거는 예정대로 치르게 됐다.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해 세계는 지금 감염병 확산으로 아우성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확산세가 꺾여 확진자 증가 폭이 관리가능한 범위 내로 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되고 있고 언제든 감염병 재확산 소지가 있어 투표를 앞둔 국민들의 불안감은 크다.

예전 같으면 이맘 때 쯤이면 투표를 독려하는 중앙선관위 홍보가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는다. 홍보 문구가 적힌 비행선을 띄우고 플래시몹을 펼치는 등 각종 수단을 총동원해 투표율 높이기에 혈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강산이다. 투표율이 높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홍보에 나섰다가 확진자가 또 다시 증가하는 날에는 모든 원성을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선거에서는 또 한 가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엔 유권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차례다. 모레(15일) 치러지는 총선에선 역대 최장 투표용지가 등장한다. 비례대표로 나온 정당이 35개나 되면서 투표용지 길이가 자그마치 48cm가 넘는다. 문제는 기표란 세로 폭이 이전보다 좁아졌다는 것이다. 기존 당과 당 사이 0.3mm 간격이 0.2mm로 좁혀졌다. 투표용지가 너무 긴 탓에 선관위가 취한 고육지책이다. 미세한 조정이지만 0.1mm 차이로 인해 발생할 불상사는 크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행사한 주권행사가 빛을 보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랬다고 투표용지 기표까지 거리두기를 하다간 경을 친다.

2017년 치러진 19대 대선이 비근한 예다. 당시 대선 후보 15명이 무더기 출마하자 선관위는 투표용지 기표란 세로 폭을 1.5cm에서 1cm로 줄였다. 기표 도장 외곽 지름보다는 작고 투표용지에 찍히는 동그라미보다는 조금 컸다. 세밀히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크기였다. 유권자들은 신경을 써서 기표한다고 했지만 무효표가 쏟아졌다. 18대 대선 때보다 1만 표 가까이 무효표가 많았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비율이 높은 시군구지역에서 무효표가 더 많이 나온 것을 보면 이번 선거에서도 고령자들이나 시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처럼 사무용 안경을 따로 두고 기사를 쓰고 신문을 읽는 유권자라면 투표소로 향할 때 반드시 안경을 챙겨가야 한다.

선거는 국민이 객(客)에서 주인이 되는 희열의 순간이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갈파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바로 투표를 두고 한 말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투표를 통해 주인으로서 권리행사를 한다. 그런데 코로나 전선(戰線)을 뚫고 투표장으로 가서 행사한 권리가 무용지물이 된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그러니 이때만이라도 기표란 밖으로 도장이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주인노릇을 잘 해야 한다.

투표는 단지 상징적인 의미에서만 중요성을 띠는 게 아니다. 실제 한 표 가치도 엄청나다. 그럼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표 가치는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4700만원이다. 입이 떡 벌어지는 이 금액은 다름 아닌 정부가 밝힌 수치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행안부가 투표 독려 캠페인을 전개하기 위해 한 의류 브랜드와 손을 잡고 내놓은 이 계산법은 21대 국회가 앞으로 4년간 심의할 정부 예산 추정치를 유권자 수로 나눈 수치다. 올해 대한민국 예산은 512조원이며, 21대 국회의원들이 임기 동안 다룰 예산은 2049조에 달한다. 이 막대한 나라살림을 다룰 일꾼을 뽑는데 주인 된 자로서 한 표의 권리행사를 포기해서도 안 될 뿐더러 무효표가 나와서도 안 되는 이유다.

총선은 단순히 지역대표를 선출하는 선거가 아니다. 그것은 지방의원을 뽑는 지방선거 몫이다. 비록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긴 하지만 결국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일할 선량들을 뽑는 것이다. 그러니 지역감정이나 지연, 학연, 이념 등에 너무 얽매여 투표를 하게 되면 지금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허구헌날 싸움만 일삼는 국회를 또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선 정파를 초월해 국가발전을 위해 일할 참일꾼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주인 된 자들이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무효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4700만원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으려면 말이다.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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