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의 맥가이버, 아랫목 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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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의 맥가이버, 아랫목 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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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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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악화로 포항축로 퇴사 후
보일러 사업 본격적으로 시작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연탄-기름 ‘융합 설비’ 직접 개발도
어려운 이웃엔 무료 보일러 설치·봉사 하며 마음까지 데워
흥해 최홍준씨 가족
흥해 최홍준 고교시절
흥해 최홍준 결혼식

최홍준의 인생이야기<33>

“强者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항상 弱者의 편에 서고, 어려운 사람들 돕고 도우면 복이 올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던 아버지의 그 쟁쟁한 말씀, 70년을 살아보니 그 말이 맞았다.

흥해읍 용전리에서 2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6·25 한국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의 남하가 본격화 되자 어머니 등에 업혀 피난을 떠났다. 가족 전체가 어머니 친정이 있는 ‘전쟁 없는 곳’ 경남 밀양으로 피난 가는 바람에 고등학교시절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정말 ‘독하게’ 생활 했다고 생각하는 그 근성은 밀양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버스비 8원을 아끼려고 매일 30리길 등하굣길을 6년 동안 걸어 다니면서 자연스레 길러졌던 것이다. 아침 6시에 학교에 가면 저녁 8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목화솜을 서울 도매시장에 내다팔며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어머니의 교육열이 워낙 높아서 고등학교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밀양에서 취직하러 무작정 올라 간 서울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30살 즈음에 고향 흥해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서울에서 별별 일을 다해봤다. 처음에는 이종사촌누나가 다니던 건설업체에 들어가 2년 동안 일했지만 회사 부도로 나온 후 양말장사, 문패장사, 볼펜공장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친척아저씨의 소개로 고향 근처 신광면 우각리 농장에서 일하게 됐다. 2년 동안 농장서 일할 무렵 새마을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1976년부터는 흥해로 집을 옮기고 모래를 실어와 빅돌(벽돌)과 보로꾸(블록)를 찍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건축일을 하다보니 보일러에 관심 갖게됐다. 건설일을 하던 중 당시 포항제철 건설 붐을 타고 인력수요가 많아질 때 우연히 1978년께 포항축로(지금의 포스코케미칼)에 입사해 제철소 내 용광로 내화벽돌 축조 일을 하게 됐고 이때 지금의 아내와 만나 신혼살림을 차렸다.

1980년1월로 기억되는데 직장동료의 소개로 포항 나루끝 ‘공작다실’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 이후 처가집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면서 혼사가 성사됐다. 31살 비교적 노총각 때 결혼했는데 그때 흥해에서 오토바이로 공단까지 출퇴근하던 터라 입고 있던 가죽잠바가 그렇게 멋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아 건강에 이상이 왔다. 고로안에서 벽돌 축조작업을 하다보니 혈압이 높아져 1984년에 회사를 그만 뒀다. 회사를 나와서는 잠시 접어 두었던 보일러 일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손재주가 있어서인지 연탄보일러와 기름보일러를 합친 ‘융합’설비를 직접 개발해 흥해에 보급했다. 이 보일러는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여기저기서 주문 문의가 쇄도했고 경주·안강·울산 등 출장도 잦았다.

“약자를 도우라”는 아버지 말씀처럼 혼자 사는 할머니 방에는 무료로 보일러를 놔 드리고 ‘보일러 봉사’ 활동도 많이 하면서 흥해의 맥가이버라는 별명이 붙었다. 처음에는 가족과 친적 중심으로 시도했던 보일러 시공은 경주·구룡포·영덕·울산까지 출장도 잦아지고 전국에서 그 기술을 배우러 많은 이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독학과 어깨너머로 배운 자존심의 기술이 빛을 발한 것이다.

위기도 있었다. 흔히 아홉수라는 39살 때 과로로 잠도 못자고 정신치료도 받을 정도로 1년 가까이 공황상태를 겪었다. 다행히 어머니와 아내의 기도덕분에 회복될 수 있었다.

지금은 주말마다 두 딸이 있는 경주를 오가며 손자 손녀를 돌봐주는 것이 소소한 낙이고 행복이다. 이제 70을 맞고 보니 욕심내지 않고 교회를 다니며 봉사에 충실한다. 40여년전 한 여인의 가슴을 데워 결혼에 성공했지만 이제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들의 아랫목을 데워주는 일이 ‘행복’으로 여겨진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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