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문화’에서 ‘밖 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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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문화’에서 ‘밖 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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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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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수도권의 잇단 바이러스 확산에 시민들은 느슨해진 마스크 끈을 다시 조이고 있다. 그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병원과 종교단체가 기점이 되었던 대구경북과는 달리 실내 유흥시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태원 클럽이 처음 떠오르더니, 이내 안마방, 룸살롱, 피시방, 감성주점, 노래방 등으로 폭탄이 돌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실내 유흥시설을 병원이나 종교단체처럼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업을 통제한다지만, 대체 어떤 업종을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 업주들의 항의도 항의지만, 당장 놀 곳을 잃게 되는 젊은 층의 불만도 문제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유희가 실내 유흥시설, 즉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방 문화’ 전성시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한국처럼 상가가 많고, 특히 ‘××방’이 많은 나라가 없다. 유흥, 휴식, 모임, 만남, 운동 등 그 분야도 다양하다. 노래방, 피시방, 룸살롱은 오래 전부터 성업 중이고, 최근에는 각종 레저, 스포츠 업종까지도 방문화로 대열로 들어오고 있다. 멀티방, 플스방, 방탈출방, 안마방, 보드방 등이 생겨났고, 운동은 물론 최근에는 골프나 야구까지도 실내로 들어가 성업 중이다. 사실상 한국인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이 ‘××방’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원래부터 한국인들이 이처럼 방 문화를 좋아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인들의 유희문화가 주로 마당, 장터와 같은 외부공간에서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실외 지향적이었다. 단체의 단합은 으레 등산을 통해 이루어졌고, 고궁이나 공원에서 약속을 잡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대학생들의 문화가 그랬다. 캠퍼스 잔디밭이나 나무 밑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는 모습은 대학생활의 전형이다시피 했다. 서울 혜화동의 마로니에 공원처럼 주말이면 젊은 층들이 모여들어 밤을 새며 즐기는 야외 명소도 있었다.

그러다 방 문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이다. 가라오케가 우리나라에 ‘노래방’이라는 이름으로 수입되면서 모든 모임의 이차 장소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그 다음 타자는 ‘피시방’이었다. 인터넷 게임의 유행과 함께 등장한 피시방이 젊은이들의 여유시간을 몽땅 쓸어가기 시작한다. 이 두 가지를 통해 교두보를 확보한 방 문화는 이후 유흥과 레저 영역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과거의 눈으로 보면 어색한 장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대학생층의 문화가 그렇다. 대학생들의 놀이문화는 대부분 실내로 전환된 지 오래이다. 공강시간 대학생들의 발걸음은 잔디밭이 아니라 주로 카페와 피시방으로 향한다. 야외를 무대로 하는 엠티, 축제, 체육대회 같은 행사도 사라져가고 있다. 주말의 여흥은 이제 마로니에 공원이 아닌 ‘감성주점’과 ‘클럽’이 대신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공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라는 한 도시학자의 지적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팬데믹 상황이 달가울 리는 없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한 걸음 멈추어 그동안의 생활방식과 생활문화를 되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그동안 우리는 방 문화의 비밀한 편안함에 너무 길든 것은 아닌지. 에어컨과 인공조명이 만들어주는 당장의 안락함에 세뇌되어 온 것은 아닌지 말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 만들어갈 수 있는 공공의 장소보다는, 누군가가 이미 조정해 놓은 실내 세팅 속에서 보내는 인생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팬데믹 시기에 방 문화가 아닌 밖으로 나가는 문화가 살아났으면 한다. 건강을 위해서이고, 또 도시를 위해서이다. 조절된 인공의 조명과 환기가 아닌, 자연의 햇살과 공기에 다시금 적응해갈 때이다. 공원과 광장, 그리고 그린웨이가 팬데믹 시대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 잡아가면 좋겠다. 공공관청이나 도서관도 앞마당에 벤치와 파라솔을 내어놓고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시민들과 만나야 할 때이다. 노천카페나 노천식당도 과감히 허용했으면 한다. 가게 앞 도로나 주차 칸에 좌석 몇 개를 놓는다고 해서 통행이 대단히 악화되는 것도 아니기에. 심지어는 젊은 층의 음주가무도 어두운 지하로부터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공원이나 운동장을 활용한 ‘야외 클럽’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세계 최초의 클럽인 영국의 복스홀도 사실 야외 공원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의 상황이라 해서 통제와 영업정지만이 능사는 아니다. 각 도시마다 현명한 대안을 찾았으면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이처럼 ‘밖 문화’로 돌아가는 것일 수 있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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