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하굣길은 참 멀었는데 70년 세월은 금방가네예~”
  • 경북도민일보
“등하굣길은 참 멀었는데 70년 세월은 금방가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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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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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독자로 이른나이에 가정꾸려
아들 셋 낳자 아버지 “인자 됐다” 울컥
정년퇴직 후 일하던 회사서 사고 당해
척추손상·언어장애로 몇차례 대수술
꾸준한 재활치료 덕 일상생활 가능해져
손주보기·텃밭가꾸기 등이 소소한
하우진
세아들과 아내와 함께
하우진 해병대시절
두호 하우진 장가간 날

 

 

하우진의 포항이야기<37>

흔히 ‘힌디기’로 불리는 포항 동해면 입암1리에서 1남4여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은 하나뿐이고 아래로 모두 여동생뿐이어서 귀하게 자랐다. 그리고 기선저인망 선장이던 아버지는 아들 하나뿐이라 교육열도 높아 고등학교까지 보내고 고기잡이배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입암1리는 지금은 포항시 호미반도 둘레길에 위치해 절경이 좋기로 소문났지만 어릴 적에도 70가구가 오밀조밀 살던 그곳은 아름다운 어촌이었다. 논들과 좁은 하천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이 마을로 안내하는데 옛 어른들에 따르면 마을이 흥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은덕’이라 불렀던 것이 ‘인덕’으로 바뀌었다가 맨 나중엔 ‘힌디기’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동해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시내 환호동에 있는 포항수산고등학교 어로과에 다녔다. 통학거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집안에 귀한 독자이다 보니 자취는 허락이 안되고 하루 4시간에 거쳐 왕복 통학을 했다. 새벽 6시쯤 집을 나서서 도구 약전 앞에서 버스를 타고 죽도시장 근처 고려예식장 버스종점에 내려서 또 40분 정도 걸어서 등교를 했다. 겨울에 해가 빨리 떨어지고 나면 혼자 마을근처까지 오는데 무섭기까지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잠시 쉬다가 해병대에 지원 입대했다. 그때 키가 180cm에 육박해 의장대로 뽑혀 차출됐다. 소문대로 군기가 셌다. 신병교육대를 나오자마자 국군의 날 행사요원으로 선발돼 서울사령부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많이 얻어 맞은 기억 밖에 안난다.

제대를 하고 결혼은 ‘독자’로 자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보다 좀 일찍했다.

1974년 25살 때, 고모부의 소개로 만난 4살 차이의 아내 김형자(당시 21살)와 중매반 연애 반으로 결혼했다. 출산도 빨랐다. 26살에 큰 아들을 낳고 2년 터울로 둘째와 셋째 아들까지 낳았다. 지금은 이 아이들이 집 나이로 48, 46, 44 살인데 결국 아들 셋을 두게 됐다. 손이 귀해 손자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셋째가 아들로 태어나자 제 손을 꼭 잡더니 “인자 됐다!”고 말해 울컥했다.


직장은 신혼 때부터 가스 배관일을 하면서 많이도 옮겨 다녔다.

우성, 대림산업, 그리고 포항제철소 열연공장에서 협력업체 일도 하고 주로 배관기계설치 일을 많이 했다. 주로 일용직일을 하다 1977년에 부산파이프(현재 세아제강)에 입사해 용접 등 기계보수 업무를 맡았다. 30년 가까이 근무하고 무사히 정년퇴직 했다.

그런데 퇴직 후 일용직 형태로 몸 담았던 회사에 다시 나갔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몇 년 전 65살 때 회사 구내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가다 차량과 정면충돌해 척추가 손상되면서 양손이 모두 마비되고 언어장애까지 왔다. 몇 차례 대수술과 재활치료로 어느정도 회복돼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것만도 큰 다행이었다.

지금은 아들 셋이 모두 결혼해 손자 하나와 손녀 넷을 두고 있다. 막내아들과 18년째 두호동 우방신천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손자와 손녀 보는 재미 외에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마누라와 함께 고향 힌디기 텃밭에 가서 깨와 고추를 심고 밭 근처 산에 나무 심는 소일이 소소한 행복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고등학교 통학할 때 4시간은 그토록 지겹고 거리도 멀었는데 되돌아보니 인생길 70은 왜 이리 빠르고 금새 지나가는지….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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