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에 빠진 한국사회
  • 모용복기자
한탕주의에 빠진 한국사회
  • 모용복기자
  • 승인 20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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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를 축적하는 방법 정당할 때
사회는 건강하고 경제는 활력
지금 한국사회 한탕주의가 만연
경제 어렵고 살림살이 팍팍해도
부에 대한 눈높이 갈수록 고조
열심히 일해서 부자 되기 난망
일확천금 노리는 한탕주의 만연
부자 등 ‘가진 자’들의 잘못 커
이들이 부를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사회 重病 벗어나기 어려워

 

모용복 선임기자.
한 때 인류역사상 최고 부자(富者)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 회장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돈이 충분한 겁니까?”

록펠러 회장이 대답했다.

“조금만 더요”(Just a little more.)

흔히 먹고 살만큼 충분한 부(富)를 누리면 더 이상 가지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들이 온갖 비위에 연루돼 굴비 엮듯이 철창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뭐가 부족해 그런 짓을 저지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거부(巨富) 록펠러 회장의 말처럼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인 것 같다.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정당할 때는 문제가 안 된다. 땀 흘려 일한만큼 받는 대가로 부를 축적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건강하고 경제도 활력을 띠게 된다. 반대로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한탕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는 심각한 중병(重病)에 걸린 사회다. 기름 때 묻은 옷을 벗어던지고 손에 든 공구통을 내던지고 로또, 주식 등에 매달려 일확천금을 꿈꾼다. 그러니 공장의 기계는 멈추고 생산성은 떨어지며 경제는 활력을 잃어간다. 국가경제가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간다. 지금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다.

최근 취업전문 사이트 잡코리아가 아르바이트 대표 포털 알바몬과 함께 성인 남녀 2000여명을 대상으로 ‘부자의 기준’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남성은 53억 원, 여성은 42억 원을 부자의 기준으로 꼽았다. 지난해 한 경제전문지가 조사한 ‘부자의 기준=총자산 10억 원 이상’보다 훨씬 증가한 수치다. 부자가 되기 위한 자산 총액이 1년 새 4~5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제가 붕괴되고 살림살이가 팍팍해도 부에 대한 눈높이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인남녀 10명 중 8명이 자신이 서민층이거나 빈곤층이라 생각하는 반면 중산층은 11%, 부유층은 1%에 불과했다. 또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로 낮은 연봉, 경제적 여건, 가정형편 등 남들보다 불리한 조건을 대부분 꼽았다. 즉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현재 자신이 가진 배경에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응답이다. 성인남녀 10명 중 4명이 ‘금수저’나 ‘재산상속’을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로또 당첨이 11%, 주식 투자 11%, 부동산 투자 9%, 창업 등 사업 8% 순이었다. 반면에 저축(10%)이나 높은 연봉(4%)은 미미했다. 심지어 ‘다시 태어난다’는 응답도 5%나 됐다. 진정한 부자의 기준에 대해선 ‘일하지 않고 지금 혹은 지금 이상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위의 설문조사를 보면 부자의 기준과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 사이에 갈수록 괴리가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자의 자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돈을 모으거나 열심히 일을 해서 부자가 되기는 갈수록 어렵다. 따라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가 만연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사회가 건강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부자가 되려면 연봉 1억을 받는 사람이 40~5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꼬박 모아야 한다. 이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연봉 1억을 받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근로소득에 의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불로소득(不勞所得)이 아니고선 평생 뼈 빠지게 일해 봤자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부자들을 포함한 소위 ‘가진 자’들의 잘못이 크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에 서민들은 죽을 지경인데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은 집을 몇 채씩 갖고 시장과 정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서민들은 평생 모아도 만져보지 못할 10억 원이 그들에겐 이젠 하찮은 돈이 된 것이다. 따라서 부자의 자산기준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럴수록 서민과의 괴리는 커지고 근로의욕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실업이 속출하고 국가경제와 가정경제가 파탄이 나 서민들은 길거리로 나앉게 됐는데도 고위공직자들은 강남 노른자위 땅을 팔지 않는다고 대통령에게 호통을 듣는다. 논란이 확산하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비서실 소속 수석비서관 5명이 지난 7일 일괄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들 중 절반이 여전히 다주택자여서 청와대 수석 대신 집을 선택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집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청와대 관료뿐만 아니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10명 중 3명이 집을 2채 이상 갖고 있는 부동산 부자들이다. 이들이 집을 팔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록펠러 회장의 말처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것이 부자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집을 내놓지 않고, 부를 나누려하지 않는 이상 우리사회가 중병에서 벗어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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