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들으러 오늘도 문을 엽니다
  • 김명득국장
구수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들으러 오늘도 문을 엽니다
  • 김명득국장
  • 승인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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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않은 삶은 사라진다
철가방이 黃金가방으로<하>
요리를 하고 있는 박병도 사장
고향을 떠난 어린시절 모습.
동해춘반점 시절.
대구 달성공원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병도 사장.
대진반점 시절 가족과 함께
◇해포(海浦)반점 시절 낳은 두 아들 반듯하게 자라

엄마가 식당 한다꼬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식당에 나와 있어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아이들이 참 반듯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요즘으로 치면 일찌감치 둘 다 스물아홉에 장가를 가서 두 가정을 합치면 손자가 셋, 손녀가 둘로 다복하다. 다만 군인이다 보니 명절 때 한 꺼번에 모든 가족이 모이기는 힘들어도 국가에 충성하고 효성이 지극해서 든든하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는 두 녀석이 군복무 때문에 못 오는 경우가 많아서 마누라와 나만 대구 반야월에 있는 장조카 집에 명절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하루 쉬고 다음날은 장사가 되던, 안되던 문을 연다. 요즘에는 명절연휴에도 명절 당일만 빼고는 배달전화가 심심찮게 온다. 시대가 많이 변했기 때문인지 어찌 보면 서글퍼진다. 원룸이나 혼자 사는 가구가 많고 한 그릇 달랑 배달시켜 묵는데가 많다.

옛날에는 중국집이 북적북적 붐비고 또 배달가더라도 계모임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야근하는데 가고 했는데 지금은 한 두그릇에 혼자사는 가구가 많아 오토바이 타고 배달 가는 길도 신나지 않다.



◇죽도동 대진반점 인수한 지 벌써 30년

참 얘기가 옆길로 빠졌다. 그때 덕수동 해포반점에서 결혼하고 아들 둘 낳고 오래 있다가 죽도시장 앞 국제나이트건물 옆에서 옮겨 해포반점을 몇 년했다. 그러다가 오토바이 배달가다가 교통사고로 좀 다쳐서 한 일년 쉬면서 죽도파출소 앞에서 조그마한 슈퍼를 했는데 이게 영 체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 년 만에 넘겨주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돼 1993년쯤 지금의 이 죽도동 복개천도로로 옮겨와 후배가 하던 중국집 ‘대진반점’을 그대로 인수받았는데 그게 벌써 30년이 다 됐다.

20여년 전 처음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죽도동 주택가에 사람도 많이 살았고 유동인구도 많아 늘 분주했다. 그리고 저 도로맞은편 상대초등학교에는 학생도 많아 운동장에서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가 늘 쟁쟁하게 들렸다. 지금은 절간처럼 적막강산이지만….

이 대진반점을 하면서 많은 단골 고객도 많은데 특히 기억나는 건 경북일보와의 인연이지요.

처음 1993년 대진반점 영업을 시작했을 때 대로변에 경북대동일보가 있었다. 지금은 경북일보로 바뀌어 시외버스터미널 옆으로 이사를 갔지만 그때는 윤전공장도 있고 직원 수도 200명이 넘어 밤늦게까지 수시로 배달을 했다. 그때 신문사 직원들과 맺은 인연으로 지금까지 신문사를 떠난 직원들이 심심찮게 그 자장면 맛을 못 잊어 찾아오기도 한다.

일주에 2~3명은 와서 그때 이야기 하며 말벗이 되어 주기도 하는데 참 고맙다. 잊지 않고 골목안까지 찾아오는 정성이. 그리고 신문도 20여 년째 그 경북일보를 받아보는데 웬만한 편집국장 수준이다. 주방이 조용할 때는 신문을 펼쳐들고 활자 한자 꼼꼼히 탐독을 하다 보니 오탈자를 찾아내거나 문맥이 안 맞을 때는 편집국장이나 간부들이 식사하러 올 때 일러주기도 했다.



◇구수한 자장 쫄깃한 면발, 그 맛 찾는 단골 아직 많다

이제 나이 60이 훨 넘었었지만 그래도 일이 있어 다행이고 행복하다. 주변에 친구들은 대부분 일치감치 퇴직해서 갈 곳이 없어 고민이던데 것에 비하면 하루 10만원도 못 벌어도 손주 손녀 용돈 줄 만치 번다고 생각하니 맘이 편하다. 70이 넘더라도 오토바이 타고 배달 나갈 힘이 있을 때 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결혼하고 마누라 하고는 같이 한 40년 가까이 항상 옆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그런다. “너거 엄마 아부지 참 대단타 우째 40년을 같은 공간에서 싸우지도 않고 일하노”라고. 그래도 가끔은 싸우기도 한다. 그래도 시집와서 무던히 주방과 홀을 지켜주는 아내가 참 고맙다.

그래서 옛날에는 정기휴일이 한 달에 하루나 이틀 협회에서 정한 날 쉬웠는데 요즘은 마누라 미장원 가는 날 가끔 문도 닫는다.

1980년 초까지 중국집은 호황이었고 그 시절 포항의 중화요리계를 두루 섭렵했으니 후회는 없어요. 지금은 마누라하고 단 둘이 식당을 꾸려가고 있지만 그래도 참 행복하다. 가끔씩 찾아주는 단골들이 오면 자장면이나 복음밥만 먹고 가는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한다. 그 이야기들이 내가 만들어내는 요리보다 더 구수할 때가 있다.

얼마전에는 경북일보 경제부장을 하다가 지금은 기획사를 한다는 단골이 옛날 출입하던 포스코 홍보팀에 근무하던 분을 데리고 왔던데 그분이 지금은 포스코 계열의 포스코강판 사장이라고 했다. 지금은 독일인가 포스코의 유럽사무소장으로 갔다고 했다. 그 분이 한번 와보고 우리집 자장면이 맛있었는지 한 달에 꼭 1~2번 7~8명 되는 직원들 데리고 이 골목안까지 와서 식사를 하고 간다. 와서는 배달 나가는 저 철가방을 강판으로 바꿔줄까하고 우리가족 사진도 철판에 인쇄를 해 주었다.

50년 가까이 자장면을 뽑아 내고 있지만 시커먼 그 자장안에 구수하고 쫄깃한 면발이 숨어 있듯이 이 세상도 사는 것이 팍팍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오고가는 따스한 온기가 있어 오늘도 배달 오토바이의 시동을 신나게 걸어본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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