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시장은 내 삶의 터전이자, 지켜야할 최고의 가치
  • 경북도민일보
죽도시장은 내 삶의 터전이자, 지켜야할 최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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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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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한 회사서 흑자 전환 위해 혼신
숙직 중 연탄가스 중독으로 퇴사
집사람 눈물 겨운 노력에 건강 찾아
몸 회복 될 무렵 ‘신포항수산’ 시작
지기싫어 누구보다 열심히 했더니
각종 평가 상장·모범운영 인정 받아
정부웅씨가 (주)신포항수산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
이한웅 작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부웅씨.
정부웅씨가 자신이 걸어온 인생역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포항시에 장학금을 기탁한 정부웅씨가 이강덕 시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죽도시장 신포항수산 정부웅씨<하>

◇적자 공장 흑자로 돌리는데 혼신의 노력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빠졌네.

그때 결혼 후 공기업이 민영화되고 나자 (주)동수로 직장을 옮겨 관리차장이 됐지.

차장은 지사장 바로 다음 관리직으로 높은 직위인데다 전반적인 공장 관리를 도 맡아하는 일이였어요. 발령 첫해 적자인 공장을 흑자로 끌어올리는 일이 가장 큰 미션이었어요. 전공을 살려 경영분석을 해보니 500여명의 여직원들이 주거가 불안했어, 학력도 초중졸이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본사에 건의해 당장 기숙사를 짓고 당시 바람이 불던 공장새마을운동으로 직장내 학교를 설치해 직원들의 배움의 길을 터주었어요.

대부분의 수산물가공업체가 여공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인데 인근 구룡포중고등학교에 야간 산업체 학급을 개설하면서 복지를 개선하니 일년만에 적자공장이 흑자로 돌아섰어.

산업체 학급개설을 추진할 때 돈 나간다고 반대하던 본사에서도 나중에 이 일로 지사장이 문교부장관상을 받고 내가 ‘새마을 포장’을 받자 능력을 인정해주었고 칭찬도 많이 했어요.

아이들 교육때문에 집을 해도로 옮기고 나서도 회사까지는 10년동안 매일 새벽에 버스를 타고 출퇴근 했지요. 그러다가 회사에서 야간 숙직있던 1982년 어느날,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연탄가스 중독이 된거야. 일단 병가를 내고 6개월 동안 집중 치료를 했지만 회복의 기미가 없어 결국 사표를 내고 수년 동안 실직상태로 시름시름 앓았지. 몸의 상태도 안 좋아 아주 심각한 건망증 증상도 나타났어요. 그래서 뭘 들으면 반드시 적어놔야 했었어.

그때 내가 일을 못하니 생활력 강한 마누라가 해도에서 제일 큰 ‘새마을슈퍼’를 운영하며 생활비를 벌고 아이들 교육도 시켰어요.

슈퍼를 하면서 집사람은 우유대리점도 했어요. 처음에는 대관령우유를 했는데 실적이 좋으니 경쟁 우유업체에서도 맡겨서 4개나 하게 됐지. 그런데 그때 의사가 내 몸 상태를 이야기 하면서 마누라한테 “극심한 장애후유증이 생길 수 있으니 운동을 시켜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내는 자전차에 우유박스 실어 보내고 눈물만 “펑펑”



그래서 어느날 집사람이 자전차에 우유를 실어주고는 배달하고 오라하더라고 그날부터 2년동안 재활을 겸해 죽을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지. 집사람이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지.

지나고 나서 이야길 들었는데 내 자전차에 종이 곽 우유 한 박스를 실어서 내보내고 자기는 돌아서서 눈물을 한 바가지씩 흘렸다는 거야. 그 정성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걸어다닐 수 도 없었을꺼야. 그렇게 차츰 몸이 회복될 무렵 2009년에 포항시홈페이지에 포항시수산물도매시장 지정 공모공고가 났더라고. 꼭 나를 위한 공고 같았어. 수산업계 10년 이상 근무조건도 충족되고 일할 자신도 있더라고.

이제 이 신포항수산을 경영한지가 10년이 되어 가지만 다 직원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지. 나도 경리와 경영업무를 많이 해봤고 자존심이 있어 누구와의 경쟁에도 지기싫더라고 열심히 해서 해양수산부의 법정도매시장 평가에서도 여러 번 우수한 상을 받았어요.

2013년에는 전국 26개 수산물도매시장 및 공판장 평가결과 우수상을 받았고, 2015년에는 영광스럽게도 포항시민상을 받았어요. 또 2016년 해양수산부장관 표창 등 많은 상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상을 받을 때마다 오래전에 떠나신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신포항수산, 모범경영으로 도매시장법인 재 지정받아

이런 모범적인 운영으로 얼마전에는 2024년까지 추가 5년간 포항시 수산물도매시장 도매시장법인으로 지정되기도 했어요.

1980년 장충체육관에서 공장새마을운동 유공자로 새마을 포장을 받을 때도 그랬어. 그때마다 ”아부지 어무이 부웅이 잘 하고 있지예”라고 혼자말을 했었어. 참 부모님 생각이 평소에도 간절하지만 70을 넘기니 더 애틋하더라고 그래서 몇년전에는 새벽마다 듣는 KBS라디오 방송에 편지를 보냈지.

하늘나라에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이다.

‘부모님 전상서’

아버님 어머님 어느덧 고희를 넘겼습니다, 부모님을 여윈 지도 벌써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까지도 제 마음은 부모님을 뵌 지가 엊그제마냥, 때로는 엄하시기도 하시면서 인자하셨고, 자상도 하시던 그 얼굴들 모습 모습이 이 시간도 제 마음속을 떠나지를 않고 품고 지내오고 있건만, 어찌 꿈속에서나마 한 번만이라도 찾아와 보이시지를 않고 지내시고 계시는지요?

지난 60여 년의 세월 동안 단 하루라도 자식 걱정 버리시지를 못해 마음 편히 지내실 날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 하늘나라에서라도 항시 보살펴 주신 끝없는 사랑덕분에 저희 가족 모두가 주어진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잘 지내오고 있으니 마음 편히 걱정만은 내려놓으십시오.

제 나이 13살이 되던 7월의 어느 날이었지요. “아버지, 아버지”하고 큰 소리로 부르고 또 불러보았어도 아버지의 대답은 들리지를 않았습니다. 점점 창백해져만 가시던 그 아버지 얼굴로, 저를 마지막으로 대했던 모습이었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빈 공간을 메우려고 그렇게도 몸부림치며 알뜰하게 보살펴주셨던 어머니, 아버지 없는 자식들이라는 소리만은 듣지 않게하신다며 엄하셨던 어머니이셨지요. 더러 더러 아버지 생각이 나실 때면 혹시나 자식들에게 보일까 해서 숨죽여 눈물 훔치시던 모습을 하며, 논, 밭에서 일하시다가 울컥 아버지 생각에 한 없이 소리 내어 우셨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셨지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라도 꺼질 듯한 순간들, 그 시절의 슬픔도 아픔도 곱씹을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어린 동생의 하루 식사 세끼를 챙기고 등하교는 물론 의복 챙겨 입히기 등 그 무질서했던, 이것저것들을 생각하며 뒤돌아볼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줄달음쳐 이 시간까지 달려왔기에 뒤돌아보면 모든 시간의 일들이 그저 감사하기만 할 따름입니다.(이하 중략)

이제 자식 걱정, 집안 걱정은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안한 곳, 아름다운 곳에서 먼저 간 동생과 더불어 생전에 느끼지 못한 부모의 정, 사랑 듬뿍 느끼며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늘 함께 하여주시길 기원합니다.

아들 부웅 올림



◇공부 못한 恨 풀려고 장학사업 10년 만에 3000만원 기탁

이제 더 하고 싶은 건 사실 사회에 대한 봉사거든요. 그중에서도 내가 학창시절때 너무 어렵게 공부했기때문에 장학사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 일(수산물도매시장)을 시작하면서 결심을 했어. 매년 포항시장학회에 장학금을 내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여건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겠다고.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 10년째인데 올해까지 꼭 3000만원을 낸건 같아요. 힘 닿는 데 까지는 이 장학사업을 계속할 거야.

되돌아 보면 나도 군에 다녀와서 동지상고를 졸업하는 그 해 취직하는 바람에 못 다한 공부에 대해 미련이 많이 남아 그 ‘미련 남은 공부’를 하느라 많이 바빴어. 직장생활을 할때 1993년부터 구룡포에서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야간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공부하러 다녔지. 연세대경영대학원 고위경제과정에 이어 연세대 행정대학원 정책과정 그리고 한양대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그렇게 마쳤어.

또 집사람하고는 포항시에서 하는 평생학습원 신중년사관학교에 1기생으로 나란히 입학해 4년을 개근하며 다녔지. 또 장학사업 말고도 법무부 갱생보호위원, 관찰위원, 포항경찰서 지도위원, 해도1동 새마을금고 이사와 감사, 포항농협 5선 대의원 등 닥치는대로 힘 닿는대로 시간을 쪼개 지역사회에 나름대로 봉사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



◇바다와 죽도시장만이 내가 지켜야할 최고 가치

젊은 시절에는 설악산 대청봉이나 지리산 천왕봉, 그리고 기회가 닿았을때는 북한 개성까지 가서 선죽교까지 다녀왔는데 지금은 푸른 바다와 죽도시장만이 내 삶의 터전이자 죽을 때 까지 지켜가야할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 부산공동어시장과 노량진수산시장 등 전국의 수산시장은 안 가본 곳이 없지만 포항처럼 신선한 수산물을 접할 수 있는 곳은 없어요.

죽도시장은 바다에 막 건져 올린 수산물이 펄떡 펄떡 뛰는 산지시장이거든. 산지시장이다 보니 신선도면에서 단연 최고이고 바로 위판되기 때문에 수송과 냉장 유통 등 부대비용이 덜 들어가지요.

동해 깊은 바다에서 나는 고기라 건강에도 좋고 또 뭐보다도 죽도시장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야.

사실 나야 새벽 3시에 나오지만 의성이나 상주, 청송 등 내륙지방에서 죽도시장을 찾는 도매인들은 새벽 1시에 보통 집에서 나오는데 월매나 부지런한거야. 꿀맛 같은 새벽잠 떨쳐가며 새벽길을 달려 죽도시장을 달려오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주변에 많아.

그게 내가 새북 3시만 되면 나를 눈 뜨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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