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내몰리는 코로나의 기사(技士)들
  • 모용복선임기자
벼랑 끝 내몰리는 코로나의 기사(技士)들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0.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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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모범국가 뒤엔
 택배 노동자들의 땀 있어
 과로·대리점 갑질·생활고
 3중고로 사망사건 잇따라
 대리점 갑질 횡포 근절과
 노동시간 제한 규정 시급
 소비자들도 빠른배송보다
 조금 기다리는 여유 필요

13명, 올 들어 사망한 택배 노동자 수다. 한 달에 한 명 이상 꼴로 택배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속에서 택배·음식 배달 등 비대면 업종이 전례 없이 호황을 누린다는데 왜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또 스러져가야만 했을까?

최근 들어 택배사업이 ‘나홀로 호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소비가 줄고 온라인 소비가 폭증한 영향이다. 하지만 물류 일선에서 일하는 택배기사들은 늘어난 물량으로 인해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이다. 1인당 하루 처리 물량이 400건이 넘는 등 열악한 업무 환경이 이들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일 경남 창원의 한 택배회사에서 일하던 50대 기사 김모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달 들어서도 벌써 택배 노동자 두 명이 잇따라 과로로 숨지면서 전 국민적인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일이어서 충격파가 더 컸다. 김 씨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김 씨는 유서에서 대리점의 갑질과 생활고를 호소했다. 그는 “우리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시험에 차량구입에 전용번호판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200만 원도 못 버는 시급도 못 버는 일을 하고 있다”며 “로젠 강서지점장과 부지점장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고용해야할 직원 수를 줄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노예계약’과 다름없는 대리점의 갑질이다. 그는 1년 여 동안 이곳에서 근무했지만 뜻대로 수익이 나지 않자 퇴직하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직원을 구해야 퇴사할 수 있다는 계약조건으로 인해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었다. 구인이 안 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택배기사 책임으로 일을 그만둘 때는 계약금을 포기하는 내용의 계약까지 맺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택배회사는 본사와 지점, 그리고 지점과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인 소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김 씨의 경우 자신의 차량으로 직접 택배를 하는 소장에 해당한다.

유서에는 대리점의 또 다른 갑질도 등장한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에어컨 없이 하차작업을 시키고, 부지점장은 화가 난다는 이유로 소장에게 먹던 커피잔을 던지기도 했다. 결국 월 200만원도 못 버는 상황에서 과도한 권리금과 차량 할부금으로 인한 생활고, 대리점의 갑질이 이 택배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것으로 보인다.

택배 노동자들이 장시간 업무로 인한 과로에 시달린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71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 52시간보다 20시간이나 많았다. 지난 12일 칠곡 쿠팡물류센터에서 야간 택배 분류작업을 하다 숨진 20대 노동자는 12시간에 달하는 고강도 근무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택배 노동자 사망사건이 터질 때마다 업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과로사 등 택배 노동자들의 되풀이 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근로시간 제한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대리점의 갑질 횡포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개선도 강구돼야 한다.

의료진들만이 코로나19 영웅들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감염증 차단 모범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비대면 쇼핑으로 대면접촉을 줄인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이는 택배산업이 발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늘 주문해서 내일 물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나라 택배 서비스는 알아줘야 한다. 여기에는 택배기사들의 눈물어린 고통이 있었다. 만약 이들 택배 노동자들의 땀과 고통이 없었던들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안정세를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필자도 언젠가부터 온라인 쇼핑을 즐겨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 많은 곳에 가기를 꺼리게 되자 마트나 백화점 등에 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휴대폰만 있으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편리함 덕택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아예 대부분 쇼핑을 휴대폰과 컴퓨터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껏 물품만 주문해 봤지 집까지 배달을 해주는 택배 기사들의 사정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신속한 배송에 대해 당연하게만 생각했을 뿐 이들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은 게 사실이다.

조카 결혼식에서 입을 와이셔츠를 인터넷으로 주문하면서 으레 배송 요청 란에 ‘빠른 배송 부탁합니다’라는 항목을 클릭하려다 말고 ‘경비실에 맡겨주세요’를 클릭했다. 조금 늦게 온다하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데 우리는 늘 조급증에 걸려 있다. 이러한 조급증이 택배 노동자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부터 조금 늦더라도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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