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명령과 풀뿌리 민주주의
  • 모용복선임기자
행정명령과 풀뿌리 민주주의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0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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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가구당 검사 행정명령
시민 불편 초래, 민원 잇따라
시의회와 사전협의 없이 진행
진단검사 점차 안정세로 전환
시-의회 협력 통해 민원 해결
지방정부-의회 지방자치 위해
서로 조화 이뤄 함께 나가야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주 더 연장하기로 했다. 설 대목을 맞아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정부 고육지책의 발로(發露)다. 다음 주 설 연휴기간 자칫 방심하단 확진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가 타는 건 지방자지단체도 마찬가지다. 지역경기가 살아나기 위해선 돈이 돌아야 하고, 돈이 돌기 위해선 소비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한 방역조치로 거리두기와 영업제한이 지속되고 있으니 점포마다 인적이 끊겨 자영업자들은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정부 방역조치와 별도로 지자체들은 코로나와의 전쟁 최일선에서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다. 곳곳에서 감염증 확산 차단과 확진자를 찾아내기 위해 행정조치를 하는 등 안간힘이다. 그 중 압권은 단연 포항시의 행정명령 발령이다.

상주 BTJ열방센터와 대전 IM선교회 관련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목욕탕 발(發) n차 감염자가 급증하자 이강덕 포항시장이 칼을 뽑았다. 지난달 25일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1가구 1인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한 것이다.

그러나 검사가 시작되자 곳곳에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선별진료소마다 줄지어 늘어선 시민들은 빗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드라이브스루 검사소에는 차량 행렬이 100m가 넘게 이어졌다. 기다리다 지친 시민들은 불만을 토로하는가 하면 일부는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포항시민 전 가구 대상 코로나 검사가 시작된 지난달 26일, 이강덕 시장은 포항시의회 제280회 임시회에 참석해 ‘선제적 코로나19 진단검사 실서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해를 당부했다. 하지만 시의원들은 불만이었다. 포항시가 전례 없는 대규모 검사를 실시하면서 시의회와 사전협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검사 대상자가 18만 명(포항시 추산)에 달하고 수 십 억 원 예산이 투입되는 일을 주민 대표기관인 시의회가 몰랐다는 건 백 번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다.


시민들의 원성이 고조되고 시의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자 이강덕 시장은 이날 정해종 의장과 비공식 회동을 갖고 수습방안을 논의했다. 코로나 검사 행정명령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민원 해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시장은 회동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오후 긴급 브리핑을 통해 검사기간 연장, 선별진료소 확대, 검체요원 증원, 방한(防寒)대책 등 보완책을 발표했다. 이 시장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선별진료소를 찾아 선제적 검사에 참여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시행 첫날 다소 미흡한 부분을 즉시 보완해 시민불편을 해소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패싱 논란’을 의식한 포항시의회도 대책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의장·상임위원장단 긴급 간담회를 열고 코로나 ‘가구당 검사’에 따른 시민 불편사항 등 대책마련을 논의했다. 정해종 의장은 “코로나 확산방지라는 긴급성은 이해하지만 사전에 시의회와 시민 공감대 없이 추진한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주민 불편을 최소화 하고 검사가 안전하게 마무리 되도록 시의회가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포항시가 전국 최초로 실시한 전 세대 코로나 검사는 ‘행동가’ 이강덕 시장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비록 의도는 좋았지만 준비 미흡과 홍보 부족, 시민 공감대 결여로 시행 초기 혼란과 시민 불편을 초래했다. 특히 주민 대표기관인 시의회와 사전 협의 없이 검사를 추진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해결 과정에서 양 기관의 수장이 보인 행보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 시장은 시의회의 불만과 시민불편 민원을 수렴해 즉각 개선조치에 나섰으며, 정 의장도 긴급 간담회를 열어 주민불편사항 권고조치와 함께 적극 협조할 뜻을 밝혔다. 그로 인해 코로나 검사는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포항시와 시의회가 협력을 통해 주민들의 민원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검사 개시 6일 만에 15만 명이 넘는 놀라운 참여율을 기록한 시민정신도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로 가는 두 수레바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선 주권자인 주민참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대의기관인 의회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풀뿌리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만약 지방정부의 장(長)이 제왕적인 권한을 행사하려 든다면 지방자치는 존재할 수 없다. 수레의 두 바퀴가 서로 조화를 이뤄 함께 나아갈 때 지방자치는 꽃을 피우게 된다. 이번 행정명령 사례를 교훈 삼아 포항시가 전국 최고 지방자치, 지방분권 모범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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