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 멍석을 깔아주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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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 멍석을 깔아주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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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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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주면 못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장터에서 점점 흥이 올라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누가 끼어들어 제대로 한번 하라며 멍석을 깔아 무대를 만들어준다. 그랬더니 있던 흥도 깨지고 분위기를 망치더라는 것이다. 은근하고 자연스럽게 해야 할 것에, 굳이 격식과 형식을 부여하는 바람에 부작용만 불러온다는 의미이겠다. 그런데 도시재생이란 명목으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업들이 이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왜일까? 그중에서도 ‘청년창업’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사업들이 특히 그러하다.

재개발과 다르다고는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에서도 무슨 ‘플랫폼 조성’이니 하는 명목으로 결국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예외 없이 ‘청년’, 그리고 ‘창업’과 같은 키워드를 달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활기를 잃어가는 도시에 젊은 세대의 등장은 필요하고, 충분한 일자리도 없는 마당에 창업이라도 도와주는 게 옳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준 공간들이 위 속담의 ‘멍석 깔아주기’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청년 창업과 관련된 공간들이 어쩌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과다한 느낌이다. 포항의 경우만 해도 ‘청년 창업’류의 간판을 달고 있는 공간들이 이젠 세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어떤 도시에서는 노는 땅 수만 평을 통으로 ‘청년창업지구’로 지정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빈 땅, 빈 건물마다 죄다 이런 종류의 공간들이 들어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경제나 일자리 관련 사업 뿐 아니라 디자인, 문화 관련 사업에서도 비슷한 공간들이 만들어지다 보니, 명칭만 다르고 내용은 유사한 공간들이 넘쳐난다. 청년 창업 공간의 홍수이다. 하지만 이런 공간들이 과연 얼마나 필요한지, 청년들의 창업수요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분석조차 없는 실정이다.

창업공간의 시설도 ‘과투자’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럴듯한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방송장비, 3D프린터와 같은 4차 산업 설비도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시설을 공급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가져다 놓은 장비들은 초반에 반짝하다가 이내 사용이 줄면서 골동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안 그래도 호흡이 짧은 첨단 장비들이라, 금세 유지관리도 곤란한 애물단지가 되곤 하는 것이다. 창업이라고 다 4차 산업도 아닌데, 덮어놓고 장비부터 사고 보는 것도 문제이다.

결국 실체도 불분명한 청년창업이라는 부문에 멍석부터 깔아주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것도 대규모로 말이다. 흥이란 것은 원래 격식 없는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과 교감에서 서서히 만들어지고, 그렇게 쌓이다 보면 노래나 춤도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이다. 자유스럽고 즉흥적이며 날 것 그대로인 매력, 그것이 흥의 본질이다. 기획된 무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것이 바로 흥이다.

청년 창업이란 것도 장터의 흥과 같다고 본다. 그들이 멍석이 안 깔려서, 말하자면 제대로 된 오피스와 첨단 장비가 없어 창업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차려진 무대보다는 장터의 흥이 필요한 게 그들이다. 장마당처럼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교류하며, 그러다 보면 흥이 쌓여 노래와 춤이 흘러나오는, 그런 자유스러운 장소야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공간이다.

기숙사나 버려진 창고, 주차장에서 장난처럼 시작해 글로벌 기업으로까지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유명한 애플의 잡스도 집의 주차장에서 친구들과 창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럴듯한 사무실이 아닌 편안하고 자유스러운 장소들이 흥을 불러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장에 넥타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 오피스는 청년다운 흥이 없는 창백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창업 공간들은 어쩌면 기성세대들이 ‘티내려고’ 만든 정책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성세대들이 도시재생이라는 명목으로 빈 공간마다 창업공간을 ‘때려 넣는다’는 느낌이다. 젊은 세대에게 대단한 인심을 쓴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의 창업활동을 도심부를 살리는 불쏘시개로 써보겠다는 얄팍한 수로 보이기까지 한다.

멍석은 깔아주지 않아도 좋으니, 먼저 그들이 흥이 나게 해주면 안 될까. 그들이 흥을 올릴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 주면 된다. 번듯한 오피스 말고, 차라리 허름하더라도 부담 없이 어울려 살만한 마을을 하나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창업이라는 부담스런 딱지는 떼어버리고, 월세도 만기 걱정도 없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흥을 만들어가도록 해줄 수는 없을까. 그러다 진짜로 흥이 나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벌어질 것이고, 기성세대는 그저 멀리서 미소만 지어주는, 그런 사업이 진짜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실체도 불분명한 대상에 자꾸 멍석부터 깔아주려는 식의 재생사업들이 슬슬 불안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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