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삶을 소중하게 꿈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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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삶을 소중하게 꿈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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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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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오성은 작가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를 들으며

멀고도 가까운
의욕을 가지고 기타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김광석은 통과해야만 하는 첫 번째 관문과도 같다. 어쩌면 그(혹은 그녀)는 김광석에 의해서 기타를 붙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아티스트가 그렇게 태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듣기에 편안하고 복잡하지 않아서 연주하는 맛이 나고 무엇보다 서정적인 코드 배열에 금방 몰입되기 마련이다. 김광석은 초보 연주자에게는 최초의 스승이자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게 할 저 너머의 어떤 경지, 사실 그는 첫 번째이자 동시에 마지막 관문과도 같다. 존재, 내가 김광석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을, 그가 이제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지나치게 정직하다고 느낀 탓이다. 나는 댄스음악과 힙합에 빠져 살았고, 어떻게 생긴 악기로 연주되었는지도 모르는 진보적인 음악을 찬양하며 밀레니엄에 가닿았다. 그러나 성년이 된 즈음부터 어디에서건 김광석을 듣는 사람이, 부르는 사람이 나타났고, 나에게도 전파되었다. 신기한 것은 그로 인해 나의 감정을 존중하며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건 한때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가 가진 힘이었다. 좋아하지 않았던 것을 좋아하게 된 순간, 사람은 변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다시 부르기

그는 <다시 부르기>라는 명반으로 ‘동물원’의 곡들과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하는데, 나는 이 ‘다시’라는 말이 참 애틋하다. 아무래도 노래는 다시 불러야 제맛인 건지, 그가 다시 불러 그런 건지, 재탄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예전부터 그의 노래인 듯 들린다. 원곡을 살리면서도 그만의 덤덤한 감정을 진솔하게 부르는 것, 포크란 어쩌면 통기타 한 대와 사람의 목소리로 모든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작지만 위대한 정신을 노래하는 일일 테다. 나는 가끔 문학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리메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예술작품을 ‘다시’ 창조하는 것에 대한 의미와 한계, 그리고 즐거움에 대한 내용이지만 열변을 토하는 것보다 김광석 노래를 들려주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 이 앨범의 모든 노래뿐 아니라 기획자에 김광석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건 한 아티스트의 내면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매듭이 풀려버린 과거의 마음이 목소리에 담긴 것만 같다. 그는 과거를 노래하는 사람이었으며, 현재와 미래의 우리는 과거의 그를 영원히 노래할 것이다.



좋아진다는 건

나와 내 친구들은 군대에 다녀와서도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며 울었고, 서른이 아직 되지도 않았는데,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울었다. 사랑은 잘 모르면서도 ‘사랑했지만’을 부르며 울고, 잊을 사람이 없음에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부르며 울었다. 나는 아직도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들으면 마음이 짙어지고,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듣고 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나는 조금은 덜 힘들다. 그보다는 덜 아프고, 그보다는 덜 괴롭다. 그가 모든 상태를 덤덤하게 불러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기타를 안고 하모니카를 부르기 위한 숨을 마실 때 나는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되니, 그것만으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김광석이 좋아진다는 건 나이를 먹었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이 말은 내가 어렸을 때 품었던 생각 중 하나인데, 이제는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의 목소리와 감정, 가사를 음미하는 음색과 진솔한 그래서 더 귀 기울이게 되는 목소리의 정체. 나는 그 정체와 나의 삶의 궤적을 겹쳐놓으려는 중이다. 김광석을 다시 들으며 한 해의 시작을 생각한다. 조금 더 소중하게 그의 노래를 들어야겠다. 남은 삶을 소중하게 꿈꾸듯이.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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