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업은 타당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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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은 타당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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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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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작은 물건 하나 살 때도 꼼꼼히 따지다 보면 어느새 밤을 새기도 한다. 주택 같은 큰 자산은 심지어 장차 물려줄 후손까지 고려해 결정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엄청난 국가재정이 들어가는 정책사업이야 말할 것도 없다. 여러 측면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이른바 ‘타당성 조사’이다. 사업의 성과를 미리 분석해서 애초에 필요한 사업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가려내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최근 타당성 조사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에너지 정책이나 공항건설과 같이 국가 미래를 좌지우지할 큰 정책사업들도 정치적 판단 대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런가하면 ‘예타면제’라고 하여, 타당성을 조사 자체를 생략할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타당성 조사의 개념 자체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사업으로 인한 이익이 비용보다 큰지를 계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타당성을 조사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편익-비용 분석’이 그러하다. 정책사업으로 인해 발생할 편익과 들어갈 비용 중 어느 것이 더 큰가를 비교하는 것이다. 사업이 실행되고 나서 2-30년 후의 시점을 가정해서 그 때까지 나타날 편익과 비용을 미리 계산해보는 식이다. 당연하게도, 편익을 비용으로 나눈 값이 1보다 높다면 그 사업은 할 만한 사업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숫자로 사업을 결정할 수 있다니, 얼마나 깔끔한가.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지 못하다. 이 단 하나의 숫자가 눈치와 분위기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4대강 사업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업에서 더욱 심했다. 찬성 입장의 학자가 계산한 결과는 2를 상회하는가 하면, 반대 입장의 학자는 0점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 사업을 놓고 이쪽은 엄청난 성공을, 저쪽은 크나큰 실패를 예상한다는 것이다. 문학작품도 아니건만 저자(?)에 따라 결말이 완전히 달라진다니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이 쯤 되면 우리나라에서 타당성 분석은 대단히 오염되어 있다는 말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사업을 시행하는 측에서 타당성도 조사한다는 것이 모순이다. 그래서 보다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만든 것이 이른바 ‘예비 타당성 조사’, 즉 ‘예타’인 것이다. 사업주체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타당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하라고 만든 제도이다. 그런데 이제 이마저도 ‘면제’가 가능한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타당성의 위기이다. 타당성 조사를 이렇게 무력화하고 버려도 문제없는 것일까.

타당성 조사가 의미를 잃게 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이른바 ‘지역 숙원사업’이 무분별하게 진행될 우려이다. 각 지역마다 기대에 마지않는 숙원사업들을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대부분 큰 개발을 지역에 유치하는 사업이고, 중앙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역민들은 사업 자체의 효율에는 큰 관심이 없을 수 있다. 지역 부동산 상승과 같은 부가적인 효과들이 더 큰 떡밥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숙원사업이란 것들은 지역으로는 플러스가 될지 몰라도 국가 전체로는 마이너스가 될 것들이 대부분이다. 타당성 조사가 면제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어떤 지자체가 사업성 따지며 꼼꼼한 살림살이에 집중하겠는가 말이다.

둘째로, 인구감소와 성장정체라는 지금의 상황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8-90년대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개발과 성장의 시대에 형성된 관성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무슨 사업이건 벌이기만 하면 수요는 알아서 채워지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제 다르다. 팬데믹이 안 그래도 꺾이기 시작한 곡선에 망치질을 해대는 바람에 작년부로 이미 인구감소가 시작되었다. 100의 노령인구를 20도 채 안 되는 젊은 세대들이 떠받쳐야하는 시대가 이미 문 앞에 와 있다 못해 거세게 노크까지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럴듯한 사업도 당장 20년 후의 수요를 기약할 수 없는 마당에, 타당성이라는 개념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취급하기 시작하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타당성 조사의 잊고 있었던 의미를 다시 인식해야 할 때이다. 타당성 조사의 진정한 의미는 미래세대를 위한 배려이다.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미리 계산해보는 과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타당성 없는 사업을 무분별하게 추진하면 후손에게 빚을 남겨주는 것이다. 현재의 기분에 취해 불꽃놀이를 벌였다가 당장 이삼십년 후의 세대들에게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두렵다. 더구나 지금은 거품은 절제하고 실속을 중심으로 국토와 도시를 탄탄하게 다져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 죽어가던 타당성 조사라도 오히려 다시 살려내서 그 의미를 회복시켜야 할 때인 것이다.

타당성 조사를 다시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이를 거추장스런 제약요인으로 보는 분위기도 일소해야 한다. 타당성 조사를 후손을 위한 배려로, 또 혁신과 창조를 북돋우기 위한 기준대로 볼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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